구순의 독거노인 /황선혜 종장 !!!

[매경춘추] 구순의 독거노인 !!!

올해 구순(九旬)의 생신을 지낸 친정아버지는 독거노인(獨居老人)이다. 서로 살갑게 세상을 살아내지는 못했으나 결혼 60년을 지켜냈던 `불굴의 여인`, 친정어머니는 4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는 명실상부한 독거노인으로서, 아들네가 있어도 독립선언을 하시고는 혼자다. 혼자 삼시세끼 차리고, 세탁과 청소도 하고, 베란다 화분에 물도 주고, 다 혼자서 하신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태어나 2차 대전을 거쳐서 해방을 맞이했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온갖 난관을 견뎌야만 했던 세대, 자신의 운명을 탓할 여유도 없이 폐허에서 이 나라를 일으켰던, 강인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노인들은 이제는 많이도 혼자서 사신다. 세상은 한참 다르게 변해갔고, 자식들은 제 갈 길로 떠나버렸다.

손자 손녀들에게 산책길에서 만난 가을꽃들, 무성한 개울가 잡목들, 느릿느릿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에 깃든 자신의 얘기들을 들려주고 싶으나, 이미 가능성 없는 희망일 뿐이다. 이런 노인들의 삶과 정서를 받아줄 여유가 없는 우리 사회는 초고속으로 저만치 달려가 버리고 말았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주체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과 인체에 결합되는 사이보그 기술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로봇 등은 과학과 의학, 비즈니스, 생활서비스, 국방, 우주개발, 산업 등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사람 일자리의 상당수를 3D프린터와 로봇에 넘겨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2025년쯤에는 로봇시장의 규모가 최대 4조5000억달러에 이르고 특히 서비스용 로봇시장이 초고속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실, 친정아버지 자식 노릇도 로봇에 맡길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말벗이 없어서 우울감과 외로움 속에 있는 이들에게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간호로봇, 수술로봇, 재활로봇 등이 이미 일본에선 나왔다는데, `딸로봇` `아들로봇`도 나올 것이다.

나는 이들 노인들이 팔십 평생 얘기를 끝없이 해도 지루해하지 않을 `효자로봇`을 주문할 것이다. 대화 중 마음까지 나눈다면, 나는 내 자리를 `효자로봇`에 내어 줄 수밖에 없다. 안 되면 자식과 달리 `반품`처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난 `효자로봇`에라도 희망을 걸어볼까 한다.

[황선혜 숙명여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