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조재선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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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5 23:57
능소화 / 조재선
돌담을 감아 오른 능소화
한낮의 열기에 턱 괴고 요염을 떨더니
어느날 님 떠나는 소리에
화들짝 돌담위로 고개를 치켜 든다.
어디쯔음 가고 있을까
그 뒤태라도 남기고 싶어
가느다란 모가지 쭉쭉 내밀고
미쳐버린 아낙처럼
돌담을 따라 줄기차게 기어 오른다.
이렇게 쉬이 떠날 임이거든
이렇게 흔적없이 떠날 임이거든
내 속속들이 베어 있는
짙은 살내음도 깨끗이 씻고 가련만
다가 올 장마빗속에 홀로 살갗 찢어 씻으라
이리 말없이 떠나는가
돌담위에 창백히 쓰러진 나를
무심한 내 님아..
한번만이라도 돌아 보고 가려므나
구중궁궐 어린 후궁 버리듯
송두리째 나를 무너 뜨리고 가는가
숨막히는 여름이 다 가기전
나는 피고 또 피어 돌담위에 기다릴 테니
가는 길이 혹여 녹녹치 않거든
아무 거리낌 없이 슬픈눈빛만 안고
바람처럼 달려 오소서
짧은 여름해가 나를 녹여
나의 생각과 의지도 다 타버릴까 두려우니
정오의 해가 머리위에 앉아 희롱하거든
지체말고 돌아 오소서, 돌아 오소서
= IBD 여름캠프장소인 양평들녘을 지나오면서 =
2007. 8.5
조재선님의 애틋한 시를 읽고 요즈음 만개한 능소화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가련해 보이네요...
*슬픈 전설의 능소화
어느 날 임금의 은혜를 입고 왕의 여자가 된 소화였지만
갑자기 끊어진 임금의 예리성이 상사병 되어
죽어서도 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기 위해 담장 아래 꽃이 되었다.
님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며 귀를 쫑긋 세우고 주황색으로 피어난다.
그 사랑이 너무 애닯고 가련하여 능소화는
시들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기다림에 지쳐 그냥 땅 위로 툭 떨어진다.
한때 임금의 총애를 받은 젊디 젊은 소화가
상사병으로 죽은 것처럼 그렇게
툭 떨어지는 것이다.
밤에도 환하게 빛이 나서 지나는 사람을 유혹한다고 해서
요화(妖花)라고도 불리지만
너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그 아름다움에 혹(惑)하지 않는 이가 무심한 것이지
환하게 핀 꽃이 무슨 죄가 있으랴!
그러기에 나는 너에게 빠져 들고 싶은 것이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