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할 이유(눅2:25-26) - 빅토르 플랭크 !!!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행복입니까. 아니면 성숙입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무런 고통 없이 그저 행복하게만 살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통 없이는 성숙도 없습니다. 행복하기만 해서는 성숙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갈등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어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성숙한 인생을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행복하기만 해서는 성숙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의 일입니다. 히틀러는 유태인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태인이면 국적을 불문하고 다 잡아다가 포로수용소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 당시 빅터 프랑클(Victor E. Frankl)이라는 한 의사가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도 유태인이라서 붙잡혀 갔습니다. 그는 직장도 빼앗기고 돈도 빼앗겼습니다.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는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입었던 옷마저 빼앗기고 죄수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단 한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가 준 결혼반지였습니다.
그 반지는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는 언젠가 살아서 돌아가면 사랑하는 아내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지품을 점검하던 간수가 그 반지마저 빼앗아 가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정말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 저 잔학한 독일인들을 용서할 것인가. 아니면 저들을 저주하면서 한 맺힌 가슴으로 살아갈 것인가.
아직도 나에게는 이것을 결단할 자유가 남아 있다. 아직도 나에게는 미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다.'
그는 마침내 결단했습니다. 그는 저들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들을 증오하고 한을 품고 살아간다면 자기 인생만 더욱 파괴돼 버릴 것이기 때문에 저들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그는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엄청난 시련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절망해 버렸습니다. '이처럼 짐승 취급을 당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그들은 죽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젊고 튼튼한 사람도 많이 있었으나 죽기로 결단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수용소 안에서 죽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빅터 프랑클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있다.
나는 죽음의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날 수 있다. 나는 살아나야 한다.' 그는 건강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3년간의 그 지긋지긋한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왜 살아남았습니까. 비록 환경 그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해도 내 마음은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을 자기 스스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스스로 죽겠다고 결단하지 않고 스스로 살겠다고 결단했던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포로수용소 경험을 그대로 담아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만들어 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절망에 허덕이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찾아 줍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결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도 우리 가슴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결단해야 합니까.
'그 말에 상처를 입고 말 것인가. 아니면 상처를 입지 않기로 결단할 것인가.' 이 결단은 우리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결단하십니까. 빅터 프랑클은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난 뒤 수많은 정신질환자들을 료하는 세계적인 정신치료사가 됩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는 처방전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어려운 고통이라도 충분히 이겨낼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 이것이 처방전의 전부입니다. 시므온은 나이가 많아서 죽을 때를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살아서 어린 예수님을 만나야 했던 것입니다(눅2:25-26). 여러분을 살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