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개념은 사실은 기독교이전에 언급되어 있다. 1929년 프랑스인 클로드 샤퍼 (Claude F. A. Schaeffer)가 지휘하는 고고학 발굴대는 시리아 북쪽 우가리트에서 우가리트, 아카디안, 후리안, 히타이트, 그리고 수메르어들로 기록된 수천개의 서판들을 발견한다.
학자들은 이기록들이 바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던 기원전 1300년경에 그주위에 살던 사람들의 것임을 확인한다. 그기록중에 하나가 바로 구약성경에 언급하는 바알(Baal)에 관한 설화이다.
그설화에 바알神이 싸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언급되어 있다.
또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개념은 그리스 신화에 신이 죽임을 당하고 살아 나는 것과 자연의 현상인 식물이 계절에 따른 죽고 사는 현상을 애급의 신과의 연관된 해석에 언급되고 있지만 모두 인간아닌 신들의 세계에서 어떤 인간적 소망의 투사로 희미하게 기록되고 있다.
우리가 익숙한 톨스토이의 "부활"은 자기본위적이고 이기적인 네휼류도프가 자신의 참회를 통해서 내부의 도적적 열망으로 속죄함으로 재탄생하고 주인공에 의해서 창녀로 유형수로 전락한 카추샤가 도덕적으로 바뀌고 시베리아 유형생활을 통해서 인내로서 항변하는 러시아 민중의모습이 되는과정으로표현된다.
그러나 인간적인 내적 변화, 그래서 도덕적, 윤리적 행동이나 동기의 변화를 부활이라고 한다면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코르니코프경우에서 냉혹한 이성주의자가 인간의 따뜻한 인간다움에 녹는 그런 변화에서 톨스토이가 이해하는 부활보다 더 분명하고 질적인 부활을 본다.
자신의 가치와 전당포 여주인의 경우를 비교해서 살인을 하고도 정당화하던 냉혈적인 인간이 변하여 인간을 인간 그대로 용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또 신약에서 사도 바울이 유대교에 절대 충성해서 그들에 반대되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죽이는 데 넘겨 주는 일에 전력을 다하다가 개종해서 기독교의 인간사랑을 온천지에 전하는 그런 변화야말로 톨스토이식 부활의 의미보다 훨씬 인상적이게 하는 경우로 본다.
그러나 기독교가 근거하는 모든 신학의 기본인 구약과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은 훨씬 근본적으로 총체적이다. 인간들은 도덕적, 윤리적 그 성경의 의미를 그들이 경험하거나 이해하거나 희망하여 보다나은 인간성에의 변화를부활에 비유하나 성경은 실존적인 의미와 영원에의 소망을 전부 포함하는 그런 의미의 부활이다.
우선 성경중 유대인들이 그들의 모든 가치와 세계관을 제공하는 구약에 구체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예가 있고, 신약에도 예수의 기적중에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나는 예가 있다. 가장 극적인 것은 죽은지 삼일이 된 나사로의 부활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분자신이 보여 주는 부활 사건이다.현대인들이 온갗 이론과 추론과 현대과학을 동원해서 예수의 존재와 부활사건을 부정 부정하나 동시대에 생존했던 바울이 구약을 통해서 이해한 구원자 예수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통한 증언에 의한 예수를 나는 수락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2000년전 이스라엘에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는 기적중의 기적인 인간의 부활를 근거하는 엄청난 소식과 사상으로 서구에 서서히 전파되어 나가 서기1000년에는 전유럽에 충만하게 되었다. 그영향은 부족과 종족의 생존을 우선으로 해서 침략, 살륙, 방화, 약탈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던 잔학하고 야만족인 바이킹이 기독교를 받아 들임으로 변화된 것이 한 예이다.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제국과 왕국과 모든 인간의 정치체제을 넘어서 민족과 부족 단위, 또는 개인에게 등장한 “인간의 아들 (人子)”이며 우주의 창조자인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로서 인간에의 사랑의 표현으로 온 예수는 독특한 생애를 통해서 그의 사명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소개된 전능자가 인간을 향한 참뜻을 궁극적으로 재선포하였다.
동시에 그는 전인류의 근본적 문제, 곧 누적된 죄악과 실존적 죄성이라는 치명적인 인간안에 있는 죽음에 이르는 병과 그결과를 극복하는 최초이며 최후의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속죄방법인 짐승의 희생을 통한 속죄형식을 따라서 스스로 인간의 죄와 악을 대신하는 희생물이 되어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숙명적 저주에서 해방되는 길을 전인류에게 선사하였다.
기독교가 선한 삶을 살 이유와 능력을 준다든가, 인생을 보다 의미있게 유익하게 살게 한다든가, 세상에 많은 선을 베푼다든가, 삶을 풍요하게 한다든가, 아니면 단순히 고통에서 자유하게 해 준다든가, 건강을 회복하게 하는 기적이 있다든가, 불행을 당하지 않거나 불행에서 구원을 받는다든가하는 인간이 갖는 일시적 인간상태, 환경조건을 개선하거나 극복하거나, 또는 크고 작은 인간적 소원, 희망이 해결되고 만족되는 방법으로 본래적인 종교심의 표현과 기대의 가능성을 갖게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든지 오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독교는 보다 근본적인 인간조건에 대답해주는 가르침이다. 기독교는 추상적이거나, 현학적이거나 끊임없이 반복하는 정진이나, 수도나, 소원이 아니다. 깨달음을 기대하면서 지치도록 생각과 육체를 훈련복하는 것도 아니고 내용과 방법이 어떠하건 자기 생각이나 상상을 따라서 정성을 보임으로 도통하는 것도, 환상적 절정도 아니다.
기독교는 약속에 근거한 종교이다. 전능자 하나님의 약속,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자신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고 그것을 인간에게 전해 주기위해서 최고의 방법으로 신이 인간이 되어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밝히려고 역사에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의도를 듣고 수락함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달아 알고 그것에 근거해서 이미 영원한 하나님이 당신의 의도를 담은 그약속을에 내가 동의하고 수긍하고 용납하고 수용하여 순종하고 답습하는 것이다.
이것을 信仰이라고 하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신앙이 信賴를 낳는 것이고 이런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다.
불행한 현상이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가 가장 불신하는 훈련을 정말로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다.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말을 주고 받고 많은 약속과 계약을 하고 맹세를 하지만, 정치, 경제, 종교, 법률, 문화, 사상들을 동원하는 모든 사회적인 관계에서 우리는 실제로는 얼마나 불신하면서도 신임하는 듯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적당하게 속아 주던지, 서로 적당히 믿어주고 동의해주는 이런 모든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약속의 중요성, 심각성에 무관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자연히 가장 신실해야 할 신앙이라는 그이름에도 우리는 종교가 교회사회같은 인간조직을 통함으로 우리 인간은 종교 지도자들과 관계에서 불신을 함께 품음으로서 모든 약속이 무력해지고 종교가 인간을 교화하거나 인간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악용하는 결과의 비극을 우리는 보아 온 것이 사실이다.
또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증거를 요구하는 태도가 서구에서 전통적인 기독교의 약속에 대한 신앙을 많이 약화시킨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모든 인간적인 질문과 의혹과 희의가 무엇이건 전세계 인간이 수천년간 소유해온 모든 지식과 지혜의 총체를 전동원해서 인간의 가장 공통적인 근본적인 문제와 고민을 해결하는, 아니 해결에의 힌트라도 줄 만한 것이 무엇이냐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에 대하여 무지막지하다고 할 만큼 가장 단순하게 가장 직설적이게 해답을 주고 있다.
그많은 철학적, 심리학적, 윤회적인 가능성과 상상과 이론이 인간의 궁극적 비극인 죽음에의 행진에 대한 해결 가능성으로 혼돈에 이르는 안내를 제시하는 데 반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게 단도직입적으로 그해결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치 않고는 절대로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선포한다. 그는,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다.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고 살아서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다”고 우리에게 제시해 온다.
예수의 선언은 어쩌면 일방적이고 독창적이며 절대권위적이다. 그의 주장은, 그의 입장이나 실제가 그러하면, 엄연한 사실이고 바로 진리인 것이다.그의 직접적인 인간에 대한 제시는 모험을 요구한다. 아니, 선택하는 결단을 요구한다. 바로 그의 존재와 그가르침과 약속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모든 회의론자들과 타종교의 가르침과 이론과 관념적 질문의 윤회를 넘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단할 것을 요구하되 그를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부활은 인간의 평균상식, 지식, 경험에 기준해서 보면, 초합리적인, 초과학적인, 초론리적인, 그래서 인간이라는 조건에 매인 당신과 나에게가장 이상적이고 영원한 해답이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며, 어떤 인간경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을 이기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그런데, 사실은, 성경은 모든 인간이 영적 존재이므로 모두가 일단 부활할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육체와 분리되는 죽음이라는 현상은 당연한 것이며 그후 그부활이 있은 후 어떤 인간들도 불가피하게 될 것이 바로 인류 대단원의 사건, 곧 전인류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부활은 바로 인류 최대의 사건인 심판에서 천국으로 결과하는 그길을 약속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