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득한 옛날에, 내가 가르치던 대학의 영문과에 들어온 여학생 한 사람을 사랑하였습니다. 그가
어디선가 구해서, 책갈피에 꽂을 수 있게 만들어준 ‘네잎클로버’가 그 때에는 짙은 녹색이었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오늘 잎사귀에는
푸른빛이 전혀 없어서 이 ‘북마크’가 행운을 가져다주리라고 믿을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 당시만 해도 교수가 학생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시대적 분위기나
도덕적 관념이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사랑 때문에 학교를 사직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학생은 졸업하고 멀리, 아주 멀리
떠났습니다. 나는 정년이 되어 퇴직할 때까지 그 교단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살고 또 살고 그리고도 또 살다 보니 이제 90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 ‘네잎클로버’는 내가 사랑하는 영어 시집 The Golden Treasury의 책갈피에 끼어 있습니다. 오늘은 Page 366 ‘Porphyria's Lover’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Robert
Browning의 작품인데 오늘 새벽에 또 읽으면서 새삼 감동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젠 이 ‘네잎클로버’와 꼭 같이 빛이 바래고 생기가
없습니다. 저는 시들고 나는 늙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원의 나라로 거처를 옮기면 아마도 이 ‘정표’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쓰레기통에 버릴 겁니다. 나 아닌 어느 누구의 눈에도 이 ‘네잎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 줄 것 같지 않기 때문이겠죠. 쓰레기통에 버려도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들이 다 깊은 잠을 자고 있을 이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나는 Browning의 ‘사랑’을 되새기며 이 ‘네잎클로버’를 유심히 들여다보는데, ‘그 사람’이 한없이 그립습니다.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