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이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삶을 ‘괴로움의 바다’라고 하였겠습니까? 문둥병 환자이면서
시인이던 한하운이 “인생은 괴로우나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문인들이
비슷한 말을 남겼지만 나는 한센병에 시달려 손가락을 잃었다는 한하운이 남긴 말이라고 생각할 때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것 같은 사람의 일생에도 남들이 모르는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옛날
딸을 부잣집에 시집보낸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잘 사나 보고 싶어서 딸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가구들도 모두 으리으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였습니다. 딸이 저녁상을 잘 차려가지고 들어왔는데 밥을 큰 양푼에 잔뜩 담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친정아버지가
깜짝 놀라, “내 딸아, 이 많은 밥을 어떻게 다 먹으란 말이냐!” 딸이 샐쭉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쏘아보면서, “아버님께서 늘 ‘밥술이나 먹는 집에, 밥술이나 먹는 집에’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밥은 넉넉히 먹는 집에 시집 온 사실을 알려드리려고요.” 그때서야 그 아버지가 딸을
시집 잘못 보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부잣집에 시집갔다가 못 살고 돌아온 딸들이 한둘입니까? 엄청나게 큰돈을 잡으려고 허둥지둥 하지 마세요. 너무 높은 자리를 탐내지 마세요. 요새 젊은이들은 “청빈(淸貧)을 즐기라”고 일러주면, ‘정신 나간 노인’으로 간주할 것이지만 오히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가난한 삶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낙도(樂道)를 권하면 그들은 ‘구시대의 넋두리’로 치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부(富)’보다는 ‘깨끗한 빈(貧)’에 인간의 생존이 더 큰 의미를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늙고 병들고 마침내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엄연한 사실인데,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책과 자연과 예술과 역사를 친구로 삼고, ‘이웃을 사랑하는 노력’을 하세요. 그러면 인생이 생각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