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어가는데 무슨 확률이 !!!
나명주(36)씨는 소장이 다른 사람보다 1.5cm나 짧습니다. 스물여섯 처녀 때 소장 1.5cm를 떼어 어머니께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신장도 하나뿐입니다. 지난달 한쪽 신장을 떼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소장 1.5m과 왼쪽 신장은 어머니 이정숙(67) 씨 몸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딸 나명주 씨는 제 육신을 두 번씩이나 떼어 내어 어머니와 함께 10년을 투병해 온 것입니다.
홀어머니에 외동딸이라 의지할 곳 없었던 모녀의 시련이 시작된 것은 2004년 명주 씨가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찾던 때였습니다. 어머니 이 씨가 소장과 대장으로 이어진 혈관이 막히는 '장간막혈전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소장 대부분이 썩어 잘라내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소장을 이식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했지만 그 당시의 의술로는 소장 이식이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때 딸 명주 씨가 "내 소장을 이식해 달라"고 나섰습니다.
성공 확률이 낮다며 주위에서 말렸지만 명주 씨는 "저를 낳자마자 아빠와 헤어지고 홀로 키워주신 엄마가 죽어가는 데 확률 따윈 중요치 않다"고 말했습니다.
2004년 4월 9일, 명주 씨의 소장 1.5m을 잘라내는 12시간에 걸쳐 이식수술이 기적처럼 성공했습니다. 국내 첫 소장 이식 성공이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경기도 부천의 2,000만 원짜리 전세방에 사는 모녀를 위해 서울성모병원이 수술비 8,500만원 중 6,500만원을 부담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들의 생활고는 더 심해졌습니다. 이식된 딸의 소장이 몸속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어머니 이 씨는 면역억제제를 계속 복용해야 했는데 약값만 매달 100만원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나오는 급여 70만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BR><BR>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직장도 못 구했던 명주 씨는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위해 뛰어 다녔지만 과로로 쓰러졌고 그 후에는 카드 돌려막기로 병원비를 대야 했고 어머니와 딸이 함께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모녀의 힘겨운 사연은 수술 후 10년 만에 나명주 씨의 경우가 정부 결정에도 영향을 미쳐 지난 8월부터는 소장 이식 면역억제제에 대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BR><BR>
명주 씨는 2011년 결혼해 아이를 가졌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가 끊길까 봐 혼인신고도 못 한 채 살다가 헤어졌고 이듬해 태어난 아들은 자신의 호적에 올려 정부의 지원으로 부천 원미구의 43㎡(약 13평) 주공아파트에서 세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BR><BR>
그러나 불행이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강한 면역억제제 성분 탓에 어머니 이 씨의 신장이 망가져 신부전증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선 "이식에 필요한 신장을 구하려면 3년은 더 걸릴 것"이란 말을 들은 명주 씨는 "그렇다면 내 신장을 이식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BR><BR>
어머니와 친척들은 "절대 안 된다."고 말렸고 10년 전 소장 이식 수술을 집도한 이 명덕(66) 교수조차 "그때 수술은 소장 이식이 절박한 많은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도전이었지만 또 장기를 내놓는 것은 무리"라며 반대했습니다.<BR><BR>
그러나 명주 씨는 포기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다가 지난 6월, 어머니 상태가 급속히 악화돼 혈액투석마저 계속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딸에게 또 짐이 될 수 없다"며 수술을 거부하던 이 씨도 딸의 애원에 못 이겨 결국 수술대에 올랐습니다.<BR><BR>
지난달 24일 명주 씨의 왼쪽 신장을 어머니에게 이식했습니다. 6시간 동안의 이식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서울성모병원 병상에 누운 이 씨를 끌어안으며 명주 씨가 말했습니다.<BR><BR>
"엄마, 얼른 집에 가자." 10년 동안 딸 덕에 두 번이나 목숨을 건진 어머니는 입만 벌리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하고 말합니다(이 글은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에 크게 의존했습니다.)<BR><BR>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