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에게 내가 자랑할 만한 것이 한 가지라도 있는가 오늘 아침 혼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에게
제 자랑을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압니다. 그러나 이 ‘자랑’만은 후배들에게,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자랑’만은 털어놓겠습니다. 나는 한 번도 밥상 앞에서 불평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무엇이라도 주는 대로, 있는 대로 먹었습니다. 간이 안 맞아도 그대로 먹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을 꾸려 나가시노라 고생하시는 어머님께 투정을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해방 되고 이듬해 우리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에는 학교에 구내식당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점심
그릇에 점심을 싸가지고 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어머님이 점심 그릇에 넣어줄 짠 반찬이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머님, 메루치 두 마리만 밥에 꽂아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이 웃으셨습니다. 나는
메루치 두 마리를 흰밥에 꽂아 가지고 학교에 가서 점심을 잘 먹었습니다. 내 친구 이근섭이 살아있다면
증인으로 세울 수가 있었는데 그는 10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옷에 대해서도, 잠자리에 대해서도, 불평을
안 하는 것이 나의 습성입니다. 꼭 한번 잠자리에 대해 불평한 기억이 있습니다. 1950년 12월 19일에
제2 국민병에 소집이 되어 국도를 피하여 도보로 부산을 향해 행군을 하는데 한밤중에 경북 경산에
도착하였습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는 상주에서 보냈습니다. 경산의
한 극장에 수용되어 잠을 자게 됐는데 전혀 난방이 없는 시멘트 바닥에서 가마니 한 장 깔고 자라고 하니 잠이 안 와서 ‘구대장’에게 추워서 못자겠다고 항의한 적은 있었습니다. 내가 불평을 하지 않는 것은 내가 타고난 자존심 때문일 것입니다. 불평을 말하는 나
자신을 생각할 때 초라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이 무척 고생하며 사시는데 아들이 어떻게 불평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환경에서의 불평은 사치인 동시에 죄악이었을 것입니다. 후배들에게 한 마디 당부하고 붓을 놓겠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먹을 것을 앞에 놓고 불평은 하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