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人의 지혜(펌)!!!
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렸을때 보잘것 없는 외모때문에
불량배의 가랑지사이를 기어건너는 치욕을 당했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나의 볼품없는 용모를 업신여겨
범증의 천거를 번번히 거부하며
십년간이나 말단벼슬아치 집극랑자리를 맴돌게했다.
항우에게 실망하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으나
연전연승하며 '해하'에서 항우를 완전히 섬멸하고
천하를 유방에게 안겨줄때까지 갖은 수모를 견뎌내야했다.
나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몰골뒤로 천하웅비의 뜻을 감추고
뭇사람들의 갖은 야유와 모욕을 참아내며
기어코 천하 통일을 이룩한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다.
- 한나라 회음후 한신(韓信) -
한때 자존심과 명예를 짖밟힌 치욕을 당했다고 생(生)을 포기하지 말라!
나는 벗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무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가 짤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하였다.
당시 궁형의 수치를 못참고 자살하는 者가 많았으나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못다 이룬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세된 남자가 모진 생명을 질기게 끌고간다는
온갖 조롱을 참아내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마침내 <사기>을 완성한 불세출의 역사가가 되었다.
- 사기의 작가 사마천(司馬遷) -
여자로 태어나서 하고픈 일을 못한다고 얼고만 있지 말라!
나는 아버지 무사확의 후처소생 둘째딸로 태어나
갓 14살때 최말단후궁 재인이 되어
당태종 이세민을 가무로써 섬겼다.
황궁생활 초기 나의 경쟁자는 여자였으나
비구니로 물러앉았다가 태종의 아들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황궁으로 돌아와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생산하며
황후가 된 후 부터
나는 남자들과 힘겨운 전쟁을 시작했다.
장손 무기를 내쳤고 상관의를 처형하였으며
심지어 나의 4명의 아들마저 차례로 버렸다.
내 나이 67살..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철옹성을
만들고나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女帝 聖神皇帝가 되어
15년간 천하를 다스렸다.
- 중국유일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 -
나는 오랑캐의 나라 원대말기 안휘성의 빈농 한족집안에서
태어나 17살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으로서 가믐과 기근에 찌든
험악한 세상과 맞서야 했고 전란통에 비적 무리의
일개 졸개가 되었을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후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공으로 반란군의 2인자가 되어
원나라 몽골군을 중원에서 몰아낸 후에도
양반사대부집안의 멸시와 견제속에서 시달려야했다.
나는 송곳하나 꼿을 땅이 없었던 빈농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었을때 조차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결국 몽골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漢族)천하를 회복한
명나라의 태조황제가 되었다.
-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朱元璋) -
나는 8살때 황제가 되었고 13살때 결혼을 했으며
14살때부터 스스로 친정(親政)을 시작했다.
응석을 부릴 겨를도 없이
오삼계,상가희,경계무의 삼번난(三藩亂)을 제압하고
몽고를 평정했으며 티베트까지 원정했다.
나는 어린 나이의 어리광도 모른채 군주가 되어
61년간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다.
-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
나는 미천한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학업도 못마치고
전장(錢庄)에 들어가 똥오줌을 치우고 마루를 닦으며
잔신부름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다시 빈털隙隔?되는 과정을 겪고 또 겪었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아무리 빈손이라도
언제든지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한푼도 가진게 없는 가운데도 스스로의 재기를 믿었고
내게 없는 것을 메꾸어주는 인재를 대함에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큰 상인이 되는데 돈 보다는 사람이 더욱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던 나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장사의 신
"상성(商聖)"이 되었다.
- 청대말 거상 호설암(胡雪巖) -
나는 1935년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을 모시고
만리장정을 따라 나선 때부터 죽는 그날까지 41년동안
2인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공산당초기 탑리더의 코스를 밟던
내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모택동을 중국혁명의 지도자로
추천하고 스스로를 낮췄던 것은 인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이 그에게 있음을 알았기때문이었다.
총리시절 행정보고를 함에 모주석의 침상옆에
꿇어 앉아야했고 방광암수술을 받고싶어도 毛의 허락이
떨어지지않아 수술을 2년간이나 미루어야했다.
방광암으로 죽어가는 초읽기의 시간속에서도
美日과의 수교, 문화대혁명의 폐허속에 놓인 국가경제 재건,
등소평을 재 신임하는 권력의 재편성을 위해 촌음을 다투었다.
나는 사망하는 순간에도
"다 죽어가는 나 따위는 돌보지말고 다른 아픈 동지들을
돌보시오"라는 유언을 남기며 인민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1인자, 인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났다.
- 주은래(周恩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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