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영화
skag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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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5 09:29
[당신의 클래식](2)영화 ‘피아니스트’& 쇼팽
[경향신문] 2006년 07월 26일(수) 오후 03:13 가 가 | 이메일| 프린트
그 남자의 이름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입니다. 피아니스트죠. 유대계 폴란드인입니다. 1911년에 태어나서 200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래 산 편이지요. 우리 나이로 치자면 아흔까지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나들었죠. 나치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였으니까요. 독일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펠스가 콘서트홀에서 ‘히틀러 만세’를 선창할 때였고, 푸르트뱅글러가 베를린필하모닉을 지휘해 베토벤의 ‘합창’을 ‘무시무시한 폭풍’처럼 연주할 때였지요.
오늘 당신과 함께 들을 음악은 ‘쇼팽’입니다. 당신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삶을 다룬 영화 ‘피아니스트’를 DVD로 보고는 가슴 먹먹한 감동을 주체하지 못했지요. 스필만을 연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의 열성팬이 된 당신은,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던 아름다운 곡들의 제목이 뭐냐고 저한테 물었지요.
첫장면을 떠올려보세요. ‘1939년 바르샤바’라는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던 곡. ‘녹턴’(Nocturne)이랍니다. ‘야상곡’이라고도 하지요. 쇼팽은 21개의 야상곡을 썼습니다. 그중 18개가 생전에 발표됐고 나머지는 유작이지요. 당신이 들었던 곡은 유작 가운데 하나인 ‘20번 C샤프 단조’랍니다. 쇼팽의 여러 야상곡 중에서 특히 사랑받는 애틋하고 서정적인 곡이지요. 영화 속에서 스필만은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이 곡을 연주합니다.
독일군이 점령한 페허의 바르샤바. 아사(餓死) 직전의 스필만은 폭격당한 빈집으로 숨어들지요. 구정물과 감자 두 개로 죽음을 벗어난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주방을 뒤지다가 통조림 깡통을 찾아냅니다. 벽난로 옆에 놓여있던 부삽으로 깡통을 따려고 안간힘을 쓰지요. 그러다가 깡통이 데구르르 굴러갑니다. 그 자리, 깡통이 멈춘 자리에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였지요. “여기서 뭘 하나?” 장교가 묻습니다. “깡통을 따려고…” 스필만은 죽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지요. “무슨 일을 하나?” 교사 출신의 장교가 다시 묻습니다. “저는…” 머뭇거리던 스필만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라고 ‘과거형’으로 답하지요. 물끄러미 스필만을 바라보던 장교가 한숨을 푹 내쉽니다.
한겨울입니다. 스필만은 낡은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호젠펠트가 “연주해 봐”라고 말합니다. 굶주림에 두 눈이 퀭한 스필만은 곱은 손가락으로 ‘발라드 1번 G단조’를 연주하지요. 4분의4박자 느린 라르고를 힘겹게 짚어나가던 손가락이 점차 빨라집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클라이막스. 오른손의 화려한 아르페지오가 폭발하면서, 스필만은 억눌려왔던 음악가의 열정을 결국 터뜨리고 말지요. 그 다음날부터 호젠펠트는 스필만의 다락방으로 몰래 음식을 나릅니다. 러시아군에 밀려 철수하기 직전, 그는 ‘마지막 빵’을 스필만에게 건네며 외투를 벗어주지요. “전쟁 끝나면 뭘 할 거야?” “연주를 해야죠.” “이름은?” “스필만” “피아니스트다운 이름이네.”오늘 권해드릴 음반은 ‘Best Beloved Chopin’(EMI)입니다. 당신에게 잊지못할 감동을 선사했던 ‘발라드 1번’을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야상곡 20번’을 미하일 플레트네프가 연주합니다. 참,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는 1952년 포로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쇼팡의 발라드 1번 G단조’(Ballade No.1 in G Minor Op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