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기(1937-19450 일제 말 구국애족의 염원 하에 여성 고등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 결과 거국적인 ‘숙명여전 설립 모금 운동'으로 이어졌다. 구황실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과 전국 각지 저명인사들의 많은 성금으로, 1939년 4월 20일 마침내 ‘숙명여자전문학교淑明女子專門學校’가 설립됐다. 청파언덕에 자리 잡은 숙명여전은 가정과 40명 · 기예과 40명 · 전수과 50명으로 개교한 뒤,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여 여성전문교육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그러나 일제의 전쟁 수행이 장기화되면서 학칙이 강제 변경되고 일본화교육이 강화되었다. 1944년 5월에는 전문학교 수업이 중단되고 1년제 ‘여자청년연성소 지도원 양성과女子靑年鍊成所 指導員 養成科’가 설치됐으며, 일본 군부가 학교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했다. 일제 말 전시체제라는 제약 때문에 창립 과정과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대적 요구에 따라 온 국민의 관심 속에서 탄생한 숙명여전은 범국민적 민족사학으로서의 위상을 꿋꿋이 지켰다
전환기(1945-1954) 1945년 8.15 해방 이후 사회적 혼란과 학원의 무질서 속에서도 임숙재任淑宰 교수가 학장으로 취임한 뒤, 새로운 학과와 교과과정을 도입하면서 한국적 교육체제를 갖추었다. 숙명여전은 1948년 5월 미군정 하의 문교부에 의해 ‘숙명여자대학淑明女子大學’으로 승격되어 문학부와 이학부에 6개 학과를 설치함으로써, 여성계와 사회의 오랜 바람이었던 여자대학으로 다시 태어났다. 얼마 후 6.25전쟁이 일어나 휴교할 수밖에 없었지만, 1951년 9월 부산 동대신동에 임시교사를 짓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교육적 열의로 수업을 계속하여, 부산 부평동 광복교회에서 역사적인 제1회 학사 학위 수여식을 거행했다. 1953년 청파동 본 교사를 복구하여 9월부터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이 시기의 모든 숙명인은 한 마음이 되어 재건의 의지를 다지며 시대의 역경을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
성장준비기(1955-1980) 전쟁의 어려움을 극복한 숙명은 1955년 3월 ‘숙명여자대학교淑明女子大學校’로 승격됐다. 초대 총장으로 임숙재 학장이 취임하여 문리대 · 정경대 · 음대 · 약대 등 4개 단과대학에 8개 학과를 설치하고 대학원을 설립, 3개 학과에 석사과정을 두었다. 교무 · 학사 행정을 정비하고 새로운 교과과정을 꾸준히 보강하여 교육의 내실을 다져갔으며,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데 주력하여 현재 캠퍼스의 기본적인 모습이 대부분 이 시기에 조성됐다. 또한 각종 학회지가 창간되고, 아세아여성연구소 등 연구소가 신설되면서 학내 연구 풍토가 활성화됐다.『숙대학보』와 <숙대신보>가 창간되고 교육방송국이 개국되었으며, 다양한 학생활동으로 젊음의 패기와 낭만이 넘치는 대학문화가 조성됐다. 제1회 ‘동문의 밤’이 개최되어 동문간의 교류와 단합을 돈독하게 하는 등 동창회 활동도 활발해졌다. 사회적 격변과 함께 대학도 진통을 거듭했으나, 숙명은 종합대학교로서의 체제와 면모를 갖추고 새 역사의 장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했다
성장기(1981-1993) 1981년 8월 첫 동문 총장으로 취임한 김옥렬金玉烈 박사는 ‘장기발전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모든 숙명인의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숙명가족의 성원으로 현재의 도서관을 신축하고, 경기도 용인에 부지를 마련하여 연수원을 건립했다. 교육?산업대학원을 신설했으며, 박물관 특설교육원을 부설하고, 이후 평생교육원으로 확대하여 여성 재교육의 기회를 넓혀갔다. 대만 문화대학, 미국 웨스턴미시건 대학 등 해외대학과 자매 결연을 맺어 ‘세계 속의 숙대’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도록 했고, 전자계산소 개설과 함께 전산화 시대의 문을 열었다. 계속해서 동문 정규선鄭奎善 총장이 부임하여 숙원사업이었던 B지구 일부를 매입해서 교지 확대의 길을 열었으며, 야간학부를 신설하여 산업체에 종사하는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동문회가 더욱 발전하여, 모교의 성장에 아낌없는 애정과 후원을 보냈다. 이를 통해 숙명은 산업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성 인재 배출에 주력하며 21세기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였다
발전기(94,7-898,2)1994년 3월 취임한 제13대 이경숙 총장은 세계적인 명문여자대학으로의 도약이라는 비전을 설정하고, 제2창학 운동을 전개했다. ‘세계적인 여성지도자와 전문 여성인력의 양성’이라는 교육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장·단기 발전 계획(1995-2006)’을 수립하고, ‘세계화’ ‘정보화’ ‘개방화’ ‘민족화’라는 특성화정책을 추진했다. 이와 함께 대학교육의 내실화를 구현하기 위하여 학사행정의 선진화를 추진하였고, 수요자 중심의 열린 교육체제를 구축하고자 획기적인 제도개혁을 단행했다. 그 결과 숙명은 교육부 교육개혁 우수대학 평가에서 1996년·1997년 연속 교육 개혁 추진 우수대학으로, 1997년 대학종합평가에서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됐다. 숙명은 연구 및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교지 확보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였고, 제2창학의 상징인 교문 신축을 시작으로 수련교수회관 및 행정관 등을 건립하여 쾌적한 연구 공간과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약학대학·음악대학·미술대학·사회교육관·국제관이 착공되어 숙명 발전의 초석이 됐다
도약기(98,3-02,2) 숙명은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선도할 디지털 대학으로 변모하고자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국내 대학 최초로 모바일 캠퍼스를 구축하였고, 가상대학 프로그램 단독 시범 운영대학으로 선정됐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 최초로 사이버대학원을 설립하여 대한민국 최고의 디지털 대학으로 인정받았다. 한편 제2창학 운동을 통한 지속적인 교육개혁에 힘입어 숙명은 1998, 1999, 2001년 3회 교육개혁 추진 우수대학으로,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연속 국가고객만족도(NCSI) 1위 대학으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 국내 대학 최초로 교육행정서비스 전 부문에서 국제품질경영시스템(ISO 9001) 인증을 획득했다.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아메리칸대학교와 복수학위제를 실시하였고, 세계 유수의 명문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어 국제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미래지향대학으로 성장했다. 또한 ‘숙명르네상스플라자’ 구축과 함께 국제관·약학대학·음악대학·사회교육관·미술대학·행파교수회관이 건립되는 등 교육인프라가 확충됨으로써 도약의 기반 구축이 본격화됐다
비상기(2002,3- )숙명은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세계 최상의 명문여자대학으로 비상하고자 새로운 비전을 담은 ‘숙명장기비전(SM Vision 2020)’을 수립했다. 그에 따라 ‘디지털대학’ ‘지식경영대학’ ‘문화선도대학’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여성 리더 양성을 목표로 ‘리더십계발을 위한 신대학교육 시스템 구축’이라는 새로운 특성화 정책으로 발전시켰다. 여성리더 육성을 위한 체계적인 리더십 교육을 총괄하고 관계 기관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숙명리더십센터를 설립하였으며, 숙명리더십개발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이에 따라 여성지도자로서의 자질 함양을 위해 다양하고 체계적인 리더십 교육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다. 한편 문신미술관 건립, 정영양자수박물관 개관, 박물관 이관, 한국음식연구원 개원, 백주년기념관 건립 등으로 제2창학 캠퍼스 조성이 완성되었고, TESOL 교육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인재관이 신축됐다. 창학 100주년을 맞은 숙명은 이와 같이 리더십 특성화 교육과 교육시설의 대대적인 확충을 통해 새로운 미래의 창공을 향해 더욱 높이 비상하게 됐다 100주년 케치프레이스 " 100년의숙명 천년의빛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