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애틋한 나의 모교, 숙명에 약속합니다”임경자 동문을 만나다 !!! | |||
2014-06-17 | |||
모교에 발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64년 졸업 당시와 비교해서 캠퍼스가 참 많이 변했을 텐데요, 소회가 어떠세요?
지금 숙대는 마치 하나의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이 들어요. 예전 캠퍼스는 단과대학 하나 정도의 크기였는데 지금은 많이 커졌지요. 과거에는 한 강의실에서 백 명, 이백 명이 함께 앉아서 공부했어요. 창문이 커서 밖이 다 보였고, 강의실에 있다 보면 ‘빠앙’하고 기차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 고향생각이 나서 집에 가고 싶었어요.
지금도 청파동하면... 참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요즘 학생들에게 고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성적(학점·영어), 취업, 연애’를 꼽는데요, 50년 전 ‘60학번 숙대생’들의 고민은 주로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시대가 시대였으니만큼 ‘현모양처’ 되는 고민이 가장 컸었어요. 그 시절에는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부모가 가라는 학과에 갔고 진로도 거의 부모님 뜻대로 정했는데, 대개 교사가 되거나 취업하지 않고 바로 결혼하는 케이스가 많았지요. 나는 졸업 후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샌폴(San Paul)여고에서 5년간 교사로 근무하다가 결혼 후에 그만 두었어요. 해외여행 기회가 제한되었던 시기여서 비행기 승무원이 되고 싶어 하던 친구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기부금 약정 차 모교에 방문하셨을 때 따님과 손녀를 동반하셨다고 들었는데, 후손을 동반하고 오신 특별한 사연이 있으세요?
함께 왔던 아이는 내 첫 손녀인데, 할머니같이 숙대 가정학과에 입학했으면 하는 마음에 데리고 왔었어요. 우리학교에는 훌륭한 업적을 이룬 여자 교수님들과 선후배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분들을 보고 배워서 진취적인 여성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요.
마음에 맞는 여자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다는 것도 여대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경우, 대학교 때부터 만났던 친한 친구들을 졸업 후부터 지금까지 50년 동안 매달 만나고 있어요. 우리 멤버는 1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세상을 떠나거나 아파서 자주 못나오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여전히 모임을 지속하며 우정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숙대가 아니면 이런 친구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요.
내 손녀 뿐 아니라 다른 여학생들도 많이 입학해서 명문 숙대의 명성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지난 달 졸업50+기념 명예졸업식에 참석하셨습니다. 학사모 사진과 명예졸업장을 받고 어떤 감정이 드셨습니까?
50년이나 지났는데 우리를 기억하고 초대해줘서 모교에 정말 감사드려요. 친정에 온 것처럼 반갑고 감회가 새로웠어요. 우리 멤버 7명이 모두 참석했는데 상당히 들뜬 하루였어요.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서 이전과 같이 고전음악감상실에도 가고 영화도 보고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모교에 천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기부하셨습니다. 기부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기부는 원래 나보다 남편이 더 많이 하고 있었어요. 남편은 지속적으로 불우이웃이나 지역사회, 병원에 기부를 하고 있고, 모교 후배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서 전달하고 있어요. 남편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옆에서 함께하며 나도 기부에 대해서 점점 익숙해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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