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요리, 책의 만남, 저의 버킷리스트였죠”
우리대학 르꼬르동블루 대학원생이 요리책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 때 요리를 직업으로 염두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고영민 씨가 '옷장만 한 주방에서 만드는 세계요리'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 이유는 의외였다. “책을 출판하게 된 이유는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었어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한 음식들이 기억에 남았죠. 그래서 항상 이러한 기억들을 모은 책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한 이유에서였을까? 고 씨의 책은 요리책임에도 불구하고 요리와 함께 그 요리를 즐긴 사람들이 떠오르는 소박하고 따스한 책이었다.
옷장만 한 주방에서 만드는 세계요리
시중에는 정말 많은 요리책들이 있다. 고 씨는 이렇게 넘치는 요리서적들과 어떻게 다른 책을 만들고 싶었는지 물었다. “요즘 세계의 가정식에 우리의 입맛은 어느 정도 길들여져 있어요. 아침엔 한식을 먹지만 점심엔 태국요리, 저녁엔 이태리요리를 먹을 수도 있고 중국요리를 먹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선정한 요리는 각 나라의 가정식 요리로 귀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만들라고 하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떤 재료를 사야 할지 막막한 그런 메뉴들이에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대형마트에서는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제가 레시피를 개발했다는 점이죠. 흔히 보는 재료로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으니 정말 신나지 않을 수 없어요”
세계의 요리를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은 보통 사람들이 따라하기 힘든 재료를 요구하거나 힘든 용어를 쓰기 마련이다. 고 씨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개그콘서트에서 최효종이 ‘이런 요리법 익숙하지 않아요? 이정도 수타면 뽑는 것은 우리가 하루에 2~3번씩은 하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는 듯했어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서술한 요리책들을 보면서 저 만큼은 독자에게 무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는 근사한 사진작품집처럼 치부되는 요리책, 얼마 지나지 않아 냄비받침으로 쓰이거나 책장에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요리책의 현실 속에서 한국의 식재료를 이용해 실생활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 씨의 요리책을 보면 요리 이외에도 요리와 야구의 공통점을 비교한 글, 여행지에서 생긴 에피소드 등 중간중간 재치있는 글들이 눈에 들어온다. 학창시절, 장래 희망을 적는 시간에 4년 내내 ‘작가’로 칸을 채웠던 그는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려면 꾸준한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15년간 일기를 써왔다. 이렇게 켜켜이 쌓인 내공은 책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가 됐다.
진실한 알맹이가 경쟁력
특별한 경력이나 프로필을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대학원생이 중대형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원고 자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백그라운드의 중요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출판사에 제안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며 요리와 관련된 책들을 충분히 읽어 본 뒤, 경쟁력이 있을 법한 포인트를 찾아냈다. 세계 요리를 소개하는 대부분의 책들이 요리재료나 조리방법 등에서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을 간파하고 모두가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요리법을 소개하자는 것이 첫째 단계였다.
이렇게 기획안을 구체화한 뒤, 그는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매일 장을 봐서 요리를 만들고 레시피를 일일이 기록했다. 모든 과정을 사진과 글로 남기는 작업도 함께 했다. 외국 음식을 국내 재료로 만들려니 쉽지 않았다. 모든 작업을 혼자 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는 “촬영 조명이 따로 없어서 저녁에 만든 요리를 버리고 다음날 낮에 다시 만들어 찍은 적도 있었고, 조리와 기록을 함께 하다보니 네임펜으로 쓴 레시피가 물에 젖어 쓴 내용이 다 지워지기도 했다”며 “그렇게 하다보니 300개가 넘는 요리에 400페이지가 넘는 글들이 쌓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작업을 끝마치고 나니 원고제안서를 쓰는 건 일도 아니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골라 단 4장으로 요약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평소 봐두었던 출판사에 원고 제안서를 제출하고 추가로 몇몇 출판사에 보냈더니 몇 주의 간격을 두고 총 다섯 곳에서 연락이 왔다. 각각의 출판사를 직접 만나본 뒤 최종 출판사를 정했고, 그 뒤로 6개월 간 방향을 더 구체화해서 내용 선정 및 편집, 디자인 과정을 거쳐 책을 내게 된 것이다. 그는 “처음 출판사와 가계약을 맺었을 때의 그 기분을 잊지 못한다”고 꿈꾸듯 말했다.
다양한 즐거움을 아는 것이 곧 행복이다
고 씨는 요리 외에 그림도 즐겨 그린다. “그림은 보통 따분하거나 잡생각이 많아 집중이 필요할 때 손에 대는 저만의 힐링법이에요. 캔버스의 크기를 정해 떠오르는 색감을 칠해가면서 시작하죠. 3~4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갈 정도로 집중하게 되고 또 마음이 차분해집니다”며“반면 요리는 마음이 행복하거나 풍요로울 때 하는 편이죠. 연애를 할 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특별한 요리를 만들거나 해요”라고 말했다. 본인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취미생활을 이어나가는 고 씨는 덕분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많아졌다. 그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폭넓은 체험도 하고, 생각의 확장에도 도움을 주는 것 같다”며 다양한 즐거움을 접하는 것이 행복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적인 요리란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에는 그 사람의 심리가 반영된다고 한다. 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먹어 본 그녀가 즐겨 먹는 음식은 무엇일까? 의외로 소박하지만 강단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된장찌개가 가장 맛있어요. 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알감자는 통으로 끓여낸 거요”
힙합그룹 다이나믹듀오의 ‘어머니의 된장국’이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된장찌개는 한국인에게 가장 일상적이면서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요리일 것이다. 그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요리, 만든 사람의 정성과 사랑이 깃든 요리”가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요리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이 있었기에 지금의 책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취재 : 숙명통신원 11기 변주영(영어영문학부), 12기 이유진(아동복지학부)
정리 :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