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은옥여사 LA : 51년간 남편의 '눈'이 되었듯…한인 시각장애인 위해 살겠다" !!!

숙명사랑1 1 2,533 2014.05.12 09:17
석은옥 여사(왼쪽)와 생전의 강영우 박사. 강박사는 지난 2012년 2월23일 별세했다.
석은옥 여사(왼쪽)와 생전의 강영우 박사. 강박사는 지난 2012년 2월23일 별세했다.
"왼팔의 허전함, 한인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인식 변화와 권익 발전 위한 노력으로 채우겠습니다."

지난 3일 월드미션대학에서 열린 '고 강영우 박사 2주기 추모예배' 참석차 지난 2일 LA를 방문한 석은옥 여사를 3일 LA한인타운 한 호텔에서 만났다.

동양인 최초로 부시 행정부 장애인 정책 차관보, 유엔 세계 장애 위원회 부의장, 루즈벨트 재단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주류사회에 우뚝 선 자랑스런 한인 고 강영우 박사 뒤에는 '내조의 여왕' 석은옥 여사가 있었다.

1961년 숙명여대 영문과 1학년 재학 당시 봉사활동 중 강영우 박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췌장암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2012년까지 그의 왼팔은 일평생 시각 장애인이었던 남편의 차지였다.

남편을 처음 만난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석여사는 그 당시를 '나의 삶을 바꾼 시점'이라고 회상했다. 무남독녀로 태어나 형제가 없던 석 여사는 강 박사와 6년간을 친오누이처럼 지냈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 선을 볼 때도 시각장애인 동생(?)이 있어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배우자를 찾았다고.

"1살 연하의 시각장애인과 결혼이란 큰 결심 후에는 남편에 대한 존경과 신뢰, 믿음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게 했고, 이는 즐거움으로 뒤바꿀 수 있는 힘이 됐다"

결혼 후에도 수많은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각장애를 가진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인디애나주 정부 특수교육국장이 되기까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동시에 강 박사의 눈이 돼주었다.

박사 학위를 받고 금의환향을 기대한 한국행에서 냉담한 현실에 좌절했을 때, 운전면허를 딴 지 2주 만에 허름한 차를 타고 450마일을 12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인디애나로 가던 때 등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석 여사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51년 간 남편의 눈과 발이 돼주었다. 반 백년을 넘게 남편을 지탱해주던 왼팔이 이제는 조금 허전하다"는 석씨는 이제 그 허전함을 자라나는 한인 시각장애인을 위해 쓰려고 한다. 그는 현재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 강영우 장학회 이사장과 한인 여성 봉사 단체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한국에서 강 박사의 모교 서울맹학교 대학 진학생 11명과 특수교사 및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학생 등 총 14명에게 장학금을 전달, 학업에 필요한 기초 장학금 지급 및 해외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제2의 강영우가 될 인재를 육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남편을 만나 멋있는 사랑을 했고, 최선을 다해 행복한 가정을 이뤄 훌륭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이수정 기자
leesoo@koreadaily.com/ 중앙일보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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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사랑1 2014.05.1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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