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문태준
보리밭에 앉아 내려오는 햇살을, 지나가는 바람을 만났습니다.가장 순도 높고,. 가장 설레는 고운 마음으로 보리의 푸른 허리를 봤습니다. 가장 깨끗한 마음의 풍경이 몸 안으로 가득 들어왔습니다. 바람을 만나 보리밭은 무희가 춤을 추듯 출렁출렁했습니다. 나는 이제 박력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는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 보리밭의 육체로, 투덜대지 않는 가슴으로 세상의 연인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연인이란 그런 사이 아닌지요, 한 호흡으로 그이가 가는대로 가는 것, 보리밭에 앉아 이처럼 움직이는 보리밭이 나의 내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람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는 이 보리밭의 시간, 변화하지 않고 넘쳐나지도 않은 이시간의 지속. 내 마음에 바다처럼 싱싱하게 일어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 ▷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수상. *2005년 미당 문학상 수상 시 "누가 울고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