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 먼 저곳 스와니 강 !!!

숙명사랑1 2 2,736 2014.12.16 03:05

머나 저곳 스와니 !!!

 

"머나 저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시작되는 "스와니 " (Old folks at home)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알려진 미국 민요들 중의 대표작으로서 스티븐 포스터(1826~ 1864) 작곡하였습니다.

포스터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핏치버그 근교에서 10남매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학교교육을 받은 것은 2년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빈둥대며 자랐고 음악교육이라고는 어릴 이웃 독일계 가정교사로부터 플루트를 배운 것이 전부입니다.

그는 기타를 치며 소일하다 20살이 되던 오하이오 신시내티로 가서 형이 경영하던 회사에서 장부 정리를 하며 젊은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그러 때에 그의 이웃에 소녀가 이주해 왔습니다. 그녀는 얼굴에 기미가 끼었고 예쁘지 않았지만 성격이 명랑해 보였습니다. 소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 이름이 뭐니?" "수산나 예요." "어디서 왔니?" "앨라배마 주에서요." "그럼 여기 살러왔니?" "아녜요, 루이지아나로 이사 거예요." 말을 듣고 포스터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노래하나 지어줄까?" "아이 좋아라! 고마워요 아저씨."하며 그녀는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장난끼 어린 마음으로 소녀를 위해 지은 노래가 바로~ 수산나라는 노래입니다. 가사는 소녀와 나눈 대화 그대로 이었습니다.

놀랍게도 노래는 히트해 전국에 퍼져졌고 때마침 금광 붐이 일어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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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사랑1 2014.12.1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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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 노래는 히트해 전국에 퍼져졌고 때마침 금광 붐이 일어 일확천금을 꿈꾸며 서부로, 서부로 밀려든 괭이 맨 광부들이 행진곡처럼 이 곡을 우렁차게 불러 골드러시의 주제곡처럼 되었습니다.<BR><BR>

1850년 포스터는 형의 회사를 그만 두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당시에 노래 부르고 춤추는 떼거리들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마을마다 천막을 치고 공연하던 유랑극단에서 노래 부르며 돌아 다녔습니다. 친구인 민스트럴이란 연예인이 악단을 데리고 자기가 사는 곳에 오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곡을 지어 그 친구에게 선사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BR><BR>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이었지만 일부 농장에서는 노예제도가 없어지고 노예로 일하던 흑인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동하였는데 포스터의 고향에도 다른 곳에서 이주해온 흑인들이 마부며 하우스보이, 소. 말치기 등 허드렛일로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BR><BR>

포스터는 흑인들이 부모형제를 떠나 멀리 이곳까지 온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슬플까 생각하며 흑인들의 고향을 기리는 마음을 노래로 지어 친구 크리스트 단장에게 줄 작정이었습니다. 포스터는 기타를 무릎위에 얹고 악보 앞에 앉아 기타 줄을 두들기며 곡과 글을 만들며 옆에 있던 형에게 둘째 음절에 들어 갈 적당한 강의 이름이 없을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BR><BR>

형은 한참 생각하다 스와니(Suwannee)강, 어때?” 하고 대답했습니다. 포스터는 아주 좋다며 작성하던 악보종이에 “머나 먼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Way down upon the Swanee River)적었습니다. 그리고는 막힘없이 술술 생각나는 대로 작곡과 작사를 해나갔습니다.<BR><BR>

포스터는 평생 후로리다 주로 여행 해 본적도 없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스와니 강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스와니 강이란 환상의 강이었습니다. 이 노래 "스와니 강"은 유럽에 까지 퍼져 영국군 병사들이 크리미아 전쟁(1854~1856 )때 머나 먼 흑해 연안 크리미아에서 고향과 부모 형제를 그리며 목매이도록 합창하면서 눈물짓던 노래가 되었습니다.<BR><BR>

고향으로 돌아 온 포스터는 동내 유지인 어느 의사의 딸과 결혼하고 이듬해에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내를 주제로 "금발의 제니" 라는 불후의 곡을 작곡했고 신혼여행으로 켄터키 주에 사는 숙모 집에 찾아갔을 때는 뒤뜰의 옥수수 밭을 바라보며 "켄터키 옛집"을 작곡하였습니다.<BR><BR>

연애하던 시절 아내가 될 처녀를 항상 마차에 태워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던 마음씨 착한 흑인 마부를 위해 "늙은 흑인 죠(Old black Joe)" 란 노래를 지었는데 그 마부의 이름이 "죠(Joe)"이었습니다.<BR><BR>

그는 1846년부터 그가 37세로 죽을 때까지 총 189편의 노래를 작곡하였지만 그 가사도 대부분 그가 스스로 지었습니다. 그가 37세로 죽을 때까지 자신이 지어서 음악 출판사에 넘겨 준 대가로 받은 저작권료와 인세는 무려 15,000불이나 되었지만 그는 늘 가난하게 지냈습니다. 예컨대 "스와니 강"의 곡을 펴낸 악보상은 50만부나 되는 엄청난 양의 악보를 팔았지만 그에게 준 저작료나 특허료는 겨우 15불이었습니다.<BR><BR>

그는 돈에 연연하지 않은 채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작곡하고 작사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는 일상적인을 바탕으로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그에게는 노래가 삶 그 자체이었습니다. 그가 재물을 잘 관리하지 못해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노래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주고 있습니다.<BR><BR>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 146:1-2)
숙명사랑1 2014.12.16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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