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 가는 건가 보내는 건가 !!!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생각하면 그런 질문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영어의 속담에 “Time and tide wait for
no man”(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학자 주희는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탄식하고, “나 이제 늙었구나.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고”하며 늙은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였습니다.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느냐가 어쩌면 인간에게 부과된 가장 중대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하루 24시간을 셋으로 나누면서, 8시간은 일을 하고 8시간은 공부를 하고 남은 8시간은 잠을 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는
엉뚱한 생활 패턴을 강요하고 있는 듯합니다. 일하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을 줄여서 노는 시간을
늘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너무 많이 만들어놓고 사실은 고민입니다. 축구, 농구, 야구를
비롯하여 많은 시합을 마련해놓고 구경하러 갑니다. 경기장까지 가는데도, 집으로 오는데도 엄청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남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격투’같은 스포츠는 권투에 비해 10배는 더 잔인하지만
그것을 구경하겠다고 비싼 입장권을 사가지고 경기장에 구름처럼 관객들이 모여듭니다. 로마 시대에는 사람과 맹수로 하여금 싸우게 하고 권력층은 그것을 즐겼습니다. Spain의 ‘투우’가 법으로 금지된 것은 얼마 오래되지 않습니다. 생활의
여유가 생기면서부터 취미생활도 부쩍 늘어났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것도 ‘시간 보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일(消日)’이라고 하지만 영어에는 ‘Kill Time’(시간 죽이기)라는 지독한 ‘숙어’도 있습니다. 왜 시간을 ‘죽이면서까지’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서 무슨 방법으로라도 ‘죽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
‘죽여야 할 시간’을 더 만들기 위해 1분 1초를 다투면서 산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죄 없는
오락을 나무랄 마음은 없지만 남아도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공부가 되는 일이라도 좀 있었으면 합니다. 김동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