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슴속에 지을수 없는 * 추억 * 분수언니 ( 2 )

수선화 0 2,288 2014.09.17 18:42

 

진달래 (꽃말 - 사랑의 기쁨 )      * 추억 * 


 


 

그후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  분수 언니는  5섯살짜리 딸을 데리고 우리 집을 몇일간 다녀 갔으나  그 뒤로는 소식을  모르고 지났다  

그후 나는  (윤희) 결혼을 하여 부산에서 살면서 분수 언니를 찾아 보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나의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때 내가 다니고 있던 교회 할머니 전도사님 하고 우리 집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분수 언니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무척 찾고 있다고 말을 하였 더니 분수씨 여기서 몇집 만 가면 거기서 살고 있다고 하셨다

지금 분수씨는 남편은 돌아 가시고 딸 하나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하면서 그  즉시 일어나서 전도사님과 찾아 가서 약 14 년만에 나는 분수 언니를 찾게 되였다

할머니 전도사님을 쫒아 가보니 어느 초가집 한 모퉁이에 초라한 초가로 되여진  방 한칸과 캄캄한 자그마한 부엌에서 겨우 밥을 지여 먹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분수 언니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졋다   

그때  분수 언니는 부산 군인 들이 입는(피복창) 옷을  만드는데서 군인들 밥을 지여 주는 일을 하고 있다가 나를 만난 후에는 우리집에 와서 나를 도와 주느 라고 공장일은 그만 두었다  

참으로 반가웠다

나는 나의 혈육인 언니들보다 더 정이 많이 들었던 언니이다

우리의 서로 만난 그 기쁨은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하겠 는 가?

다음날부터 는 분수 언니와 나는 옜날 우리가 자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하루 하루를 즐겁게 지나면서 

그리고 얼마후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께 분수 언니 사정을 이야기를 하고는 나와 언니가 분수 언니와 딸이 살수 있는 전세 집을 얻어  깨끗한 집으로 얻어 살림을 옮겨 주었다 

나는 분수 언니 덕에 아들과 딸을 마음 놓고 맡길수가 있었고   집도 맡기고

참 마음 놓고 외출도 하고 나의 아들과 딸도  친 손주 처럼 사랑을 하여 주어서

나는 너무 너무 고마웠다   

 

나는 부산에서 약 10년을 외롭고 쓸쓸 하게 살다가 마음에 고향 같은 분수언니를 만나게 된 것은 정말로 우리 주님이 주신 은혜요 축복이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을 한다


그런데 분수 언니의 말을 들어보니 살아 가는 데 너무 힘든  일들이 많이 있다고 나에게 말을 하여 주는 것이다  분수 언니의 동내에 사는 사람들이 돈을 꾸어 가고는 값아 주지를 않는 다는 것이다

분수언니를 너무 힘이 없는 사람으로 얕보고 돈을 떼어 먹는 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분수언니가 살고 있는 동내에서 2 부락 정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살았기 때문에 시장 에 가면 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돈을  떼어 먹은 여자들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여자 들이라는 것이다 



  추억


누구 인가 무슨  장사 하는 사람인가?

모두 알아 오라고 동생이 말을 하더라고 하니  그날로 분수 언니 돈을  갚아 주더라고

나를 무척 무섭게 생각을 한다고 분수 언니는 통쾌 하다고 살맛이 난다는 것이다

나와 분수 언니는 세상에 태여 날 때 부터 큰 인연으로 태어 난 것 같다 


이런 우리들의 사정을 모르는 나의 작은 시누이는 갑자기 우리 집에 오더니 내가 아들을 낳았을때 나의 친정 아버님이 서울에서 비행기를 태워 다리고 온 일하는 처녀를 꼬여

자기 언니 집 ( 큰 시누이 집)으로 빼여서 다리고 가드니 어느날 우리 부산 집에 갑자기

또 와서 분수 언니를 또 꼬여 보려다가  분수 언니에게 쓴 욕을 먹고 그만갔다 

 분수 언니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직장에 약 3년 일을 하다가 좋은 청년 하고 결혼을 할 때 나와 마국에 사는 언니 하고 분수 언니 딸에게 피아노를 하나 사주었다

나도 결혼 할 때 못 가지고 온 피아노를 분수언니를 생각하면서 나와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가  돈을 보태서  사주었다

분수 언니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이 결혼을  하였으나 분수 언니는나 윤희 덕에 그렇게 섭섭한 것을 모르겠다고 하여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였다 


분수 언니는 우리가 서로 만난 후로는 내가 이민 떠나는 날까지 나와 함께 살았으며 나는 친정 어머니보다  때로는 더욱 든든 하였다

친정 어머니는 여러 자식을 돌보지만 분수 언니는 나만 돌보아 주니 너무 좋고 믿어 지는 것이다


나와 어린 시절 한집에서 약 25 년 같이 살아 왔기 때문에 내가 무엇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대로 만들어 주었고 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언니 는 나의 마음속에  들어 왔던 것 처럼 나를 이해 하고 사랑하고 위해 주었다

요즘 같이 험하고 험한 세상에서 이렇게 믿을 수 있는 언니가  참으로 좋왔다 


그런데 나는 나의 아들과  딸의 공부 문제 때문에 한국을 떠나야 만했다  

하루 아침에 이민을 더나 온 것은 안이지만 분수 언니를 두고 오는 일도 나의 가슴 한

~~ 비는 것 같았다  

나는 이민을 떠나면서 백금 5섯돈 짜리 쌍 가락지 와 백금 목거리를 분수언니에게 주고 내가 다달이 수고 비 로 주고 있던   돈도 다섯달 분을 주고 이민 을 나는 떠나 왔다 


우리가족이  이민 생활 10년이 지나간 후로는 우리 는 미국 뉴욕 에서 살아 가는 데

별로 걱정 없이  살만하여 나는 분수 언니를 미국 관광을 시켜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였으나 분수 언니는 한국에 집도 없고 재산이라고는 전혀 없고 시집을 간 딸의 집에서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미국 비자를 받는  일이 불가능 하였다


몇번 이나 비자를 신청을 하였으나 받지 못하였다

그후 나의 드라이 크리닝 가게에 오는 손님이 한국 대사관 대사 에게 2 회나 편지를 하여주었으나 미국에 오면 돌아 가지 않는 다는 것이 이유로 비자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이라고 회답이 왔다  


한동안 분수언니는 한국에서 미국에 온다고 새 옷도 사고  마음도 많이 들떠 있었으나 1-2 년 동안 노력을 하였으나


몇번 비자를 신청 하였어도 받지 못하게 되니 마음도 조금은 가라 안는 듯 하였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분수 언니는 젊은 청춘을 우리 가족에게 바친 언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하면 도리여 우리 집에서 잘 자라게 해주었다고 말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나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결혼해서 일을 해보니 분수 언니가 더 없이 불쌍하다,수 언니의 힘으로 못하는 것을 한가지라도  해주고 싶었다 

나는 하룻밤 분수 언니를 생각 하다가 밤잠을 그만 놓쳐 하룻 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 새우다가 좋은 생각이 들게 되였다


예수님께서 나의 마음속에 들려 주신 것이 분명하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얻을 것이라//  나는 지금 이 성경구절이 어느  복음 어느 장에 있는 것을 잊어 버려서 알수 는  없지만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약속을 하여 주셨다

~~6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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