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슴속에 지울수 없는 * 추억 * 분수 언니 ( 1 )

수선화 1 2,292 2014.09.02 20:41

코스모스 꽃말 (순정 .애정)       * 추억 *

 


(1) 요즘에도 꿈속에서 나는 때때로 분수언니를 만나본다 .

나의 마음 속에 서  지울 수 없는  분수 언니

분수 언니는 나의  혈육은  아니

내가 평양에서 태여 나기 약 3년 전  대구 아주 강촌에서 우리 사돈 되시는 목사님 손에 이 끌려서 15  1411 16 20살 처녀 (여자) 다섯 명이  하루 저녁에 평양에 도착 하였다고 한다

 

나는 옛날 내가 세상에 태여나기도전에  있었던 일이라 자세히 는 알수 없으나  분수 언니의 말에 의하면 전기도 없는  강촌에서 살고 있으면서  평양에 다녀온 어른 들의 말에 의하면 평양은 전기 불도


저녁이면 들어 오고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가지않고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고  쌀밥만먹고 살아 간다는 말에 너무 호기심에


 마음이 부풀어올라서  부모에게는 말을 하지 못하고 친척  언니에게만 평양으로 간다고 하고는 목사님께는 부모가 허락을 하였다고 하고는  조그만 옷 보따리를  같은 동네 사는 친구에게 맏기어 놓았다가 한밤중에 5 명의 처녀가 목사님을 따라서 평양으로 오게 되였다고 한다

그때 나이가 조금 든 처녀들은 밥을 지을 수가 있다고 하여 우리 친척 집 식구가 조금 적은 집으로 가고 분수 언니는 겨우 11살 밥도 반찬도 할 줄 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것이 이라고 한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노 할머니  (친할아버지의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큰고모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계셨고  음식을 하는 아주 머니 가 2사람  문간 방에는 바느질 (한복) 을 전문적으로 우리 가족 의 것을 만드는  침모 부부가 우리 가족처럼 문간방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는 대가족 제도  였기 때문에  노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서서 손님이 끝일 날이 없이 바쁘고 우리 형제가 5 섯 이였다고 한다

분수 언니가 우리 집에 와서 나와 나의 밑에 동생 2명이 더 태여 났다고 나에게 내가 이세상에 태어 나기 전의 이야기를 생 생 하게  들려 주곤 하였다

나는 잘 모르지만 분수 언니는 우리 형제들 하고 같이 놀아 주는 친구 역을 몇 년 동안을 하면서 잔잔한 일부터 배워가면서 살아 왔다고 한다

혹시 비가 오면 우산을 학교에 까지 갔다 주는 일  또는 어린아기를 잠시 업어주는일등, 잔잔한 일을 하면서 일도 배우고 저녁이면 야간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분수 언니가 우리 집에 와서 3 년후 내가(윤희) 태여 났다고 한다

 

내가 태여 나는 날 분수 언니는 산파를 부르러 뛰어 가다가 그만 돌에 걸려 무릎을 크게 다쳤다고 하면서 나에게 흉터를 보여 주는 때가 때때로 있었다

분수 언니는 지금 나의 생각으로는 17 세쯤 되였을 때 대구에서 부모님들이 집으로 돌아 오라고 여러번 인편으로 소식이 올때마다  몇 번이고 집으로 돌아 가려고 하였으나  윤희 내가 너무 울면서 언니의 다리를잡고  놓아 주지를 않아서 가지를 못하게 해서 자기 집으로 돌아 가지를 못했다고 한다

계속 ~~(2)

 

 




그렇다  나도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분수 언니와 나는 특별히 가깝게 지났다


나는 분수 언니가 너 무 좋았고 분수 언니도 나를 제일 사랑 했다 

친 언니 들은 때때로 신경질도 부리고 야단도 치지만 분수언니는 그렇게 할수도 없었겠지만 나에게는 특별히 잘해 주었다

그래서 너무 좋고 또 언제나 우리집에서는 항상 부엌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가엾게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혹시 손님이 오셔서 나에게 사탕 사먹어라 하면서 돈을 주면 나도 돈이 좋은 줄을 알면서도  때때로 분수 언니에게 돈을  주다가는 친언니 들에게 야단도 많이 맞았다


때로는 분수 언니가 좋아 하는 색 실도(수를 놓는 실) 사다가는 친 언니들 모르게 갔다 주곤 하였다 


그때 당시 우리는 가족 수가 많아서 사과 1box (상자)를 사오면 몇 개씩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분수 언니는 우리들 보다 조금 적은 개수를 받는 것도  너무 가엾어서 우리가족 모르게 나의 것을 몇 알 갔다 주어야 나는 마음이 편하고 기뻣다


특히 우리는 형제가 너무 여러 명이고(8남매) 어머니는 몸이 약해서 항상 누워 계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이 6 섯째 인 나에게 까지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옜날 에는 아이들 보다는 어른(노인)들 중심으로 살았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많이  받을 수가 없었 때문에 나는 분수언니의 사랑이 너무 좋았 던것 같다

나의 친정아버님께서는 자수성가로 일찍이 거부가되셨다고한다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였기 때문에  빨갱이들에게 주목을받아  하루같이 보안서(경찰서)로불리워 다니는  까닭으로  우리가족은 자유를 찾아서  38선을 넘을 쯤 에는 분수 언니가 약 23살쯤 되였던 것으로 기억을한다  


계속 _

  

 


그때 분수 언니는 평양에 약혼 자가 있었 으나  얼마 후 우리 부모님이  살펴보니 분수언니의 약혼자가 너무 빨갱이 같아서 우리가족을 따라서 38선을 넘겠느냐 약혼자와 결혼을 하겠느냐 분수 언니께 물어 보았다고 한다 


우리 아버님께서는 그때 분수 언니는 대구에 친부모 형제가 있기 때문에 이북에 두고 오는 것이 마음이 아프게 느껴져서  우리 가족을 따라서 38선을 넘겠느냐 ?물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38 선을 같이 넘어 오는과정에  남쪽의 경찰들이 우리 가족 속에 간첩이 끼어 온다고 분수언니를 무척 애를 먹이면서 여러 가지로 조사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진실은 통하기 때문에 무사히 우리와 함께 남한으로 와서 살고 있다가 6 ,25 전에 나의 아버님이 경영하던 육군 피복 공장에서 일을 하던 군인하고 약혼을 한후 6.25 를 또 격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아버님께서는 평양으로 정부로부터 발령을 받고 가게 되여 분수 언니는 전쟁중 약혼자에게 인계를 하고  우리 가족 하고는 헤여 지게 되였다 


그후 우리가족은 평양도착 15일후 후퇴하는 국군을따라 다시남쪽으로 .

1,4 후퇴가 되여  우리는 다시 분수 언니와는 잠시 부산에 서 만났으나 우리가족이  제주도로 갔기 때문에 우리와 분수 언니는 다시 오랜 세월을 헤여 져서 서로 소식을 모르고 살게 되였다 계속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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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2014.09.0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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