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존스'가 '피그말리온'을 주제로 그린 그림에는 사연이 있다.
'번존스'는 사교계의 여인인 이혼녀 '잠바코'와 사랑에 빠지고
'번존스'의 부인이 이를 알게된다.
'번존스'가 아내를 떠날 수 없음을 알게된 '잠바코'는
먼저 '번 존스'를 떠난버리고 만다.
그러나 번 존스는 떠나버린 '잠바코'을 그리워하면서
'피그말리온' 시리즈를 10여년에 걸쳐 완성한다.
이 그림속의 인물이 바로 '잠바코'이다.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에 빗대어 '잠바코'를 환생시킨 것이다.
James Jacques Joseph Tissot (1836-1902)
The Last Evening
Oil on canvas, 1873
Guildhall Art Gallery, London
'제임스 티솟'과 '캐슬린 뉴톤'[Kathleen Newton]
런던에서 티솟과 이웃해 살았던
모델 겸 애인이었던 캐슬린 뉴톤은 티솟을 만나기 전에
결혼을 위하여 인도로 가던중 선장과 눈이맞아
사생아를 낳았고 그로인해 남편과 이혼한 이혼녀였다.
이혼녀와의 동거라는 따가운 시선속에서도 뉴톤을 사랑했지만
뉴톤은 티솟과 동거중에 또다른 사생아를 낳았고
티솟을 만난 지 6년만인 스물여덟에
두 사생아를 남겨둔채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티솟은 '자크 조셉'이였던 본명을
'제임스 티솟'으로 바꾸고 런던을 떠나고 만다.
("공원벤치", 제임스 티솟, 1882)
여인은 화가의 연인 캐슬린이고, 아이들은 그녀의 아들딸과 조카 릴리이다.
그림이 완성되기 전, 그림 속 여인 캐슬린은 폐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티솟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이 그림을 40년 간 팔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티솟은 "지나간 폭풍우"라는 그림을 시작으로 수많은 캐슬린 그림을 그렸고
, 캐슬린이 죽은 후 그의 명성은 쇠락을 길을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티솟은 캐슬린 때문에 편치만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캐슬린은 사생아 둘을 가진 이혼녀여서, 캐슬린을 사랑한 티솟의 도덕성은
6년간 '왕따'를 당할 정도로 사교계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 다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라고 하기에는 요즘에도 좀 씁쓸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아무런 뒷 얘기를 모르고 보는 이 그림에는 행복이 가득하기만 하다.
화가를 바라보는 아이들(특히 벤치에 기대고 있는 릴리, 캐슬린의 조카)의 시선,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캐슬린의 시선, 무엇보다도
그런 캐슬린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선이 그림 가득 행복을 채우고 있다.
배경의 화사한 꽃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이다.
'달리'와 '갈라' [Gala]
아내 '갈라'를 달리에게 빼았겼던 러시아 시인 폴 엘리아르는
피카소와도 정신적 교감을 나누었던 시인이였다.
친구의 초대에서 우연히 만난 갈라는 달리의 끈질긴 구에에 넘어가
달리와 함께 시골로 도피행각을 했다.
남의 부인을 가로챘다는 비난과 함께 부도덕을 비난하는 아버지와도
의절한 달리였지만 갈라에게서는 평화를 얻었다.
갈라는 달리의 전 생애에 걸쳐 영감을 준 여인이였지만
악명 높은 여인이기도 했다.
달리와 갈라는 나이가 들면서 토끼를 한 마리 길렀다.
노부부는 그 토끼를 몹시 사랑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부부는 멀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토끼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밤늦게까지 의견을 나누었지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 토끼가 그들 외에는 사람들을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갈라는 오찬을 준비했고 달리는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자기가 먹은 것이 토끼고기 스튜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달리는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고
그 충실한 동반자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갈라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그 토끼가 자신의 내장 속으로 들어가
내장을 천천히 애무하다가 마침내 제 주인 신체의
일부가 된다는 사실에 흐뭇해 하고 있었다.
육신의 융합에 비하면 육체적 행위의 사랑은 극히 하찮게 여겼던 여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