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李 相 元(Lee Sang Won)의 이방인
(1935 ~ )
이상원은 입지전적인 독학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시작한 극장 영화간판에서부터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 명사들의 초상화를 의뢰받아 그리면서 한때는 초상화 1인자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작가는 불혹이 되던 나이에 순수 미술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기호에 맞춘 그림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자하는 열망에 의한 결정이었다. 늦깍이 화가인데다가 제도권과는 어떤 인연도 없는 작가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을 비롯하여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수상, 중앙미술대전 특선 등의 민간주도 공모전에서 차례로 입상하게 되면서 순수화가로 화단에 입성하게 된다.
독학으로 오랜 시간 연마한 독특한 기법과 재료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점을 결합하여 담백하면서도 리얼한 작품으로 나타나게 된다.
국내에서 수차례의 개인전을 치르고 난 후 그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확실히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생겼는데 바로 모국이 아닌 해외 저명한 미술관을 갖었다..
1999년 러시아 국립 러시안 뮤지엄에서 이루워진 초대전은 이상원 화백이 생존작가로는 처음이다. 2005년에는 모스크바의 국립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30년간의 화업을 정리하는 기념 초대전은 국내에서 보다 해외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보내는 끊임없는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루어졌다.
서구에서 바라보는 이상원 화백의 독창적인 조형세계는 가장 동양적인 표현양식으로 드러나는 강렬한 휴머니티를 내제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트레차코프 미술관 관장 발렌틴 로디오노프는 “영원의 초상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는 인생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봐야 할 것이다” 라고 말을 했다한다...
인물 연작은 이상원의 작품에 있어 종착점이 되는 지점이라고 작가 스스로 밝힐 만큼 작품세계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상업 초상화 제작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던 작가는 20여 년의 세월을 돌아와 자신만의 인물화를 시작했다.
“인물화는 나에게 마지막 종착역이나 다름없다. 어릴 적 연필을 잡고 인물을 그리기 시작한지 대충 60년 남짓이니 이제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심성을 그리는 느낌으로 작업하게 된다.”
이상원은 시골 장터, 바닷가등 소외되고 구석진 곳을 집요하게 찾아다닌다. 투쟁적인 삶과 불굴의 의지로 작품세계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인도 바라나시는 3000년 전부터 지속되어온 종교적인 성지이다. 흰두교의 성지로 알려져 있으나 해탈과 초월의 세계를 만나고자 하는 전 세계인들이 모이는 곳이다..
이상원의 인물은 고통과 기쁨, 추함과 아름다움의 이분법을 넘어서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그 자체로써 존재의 고귀함을 드러낸다.. 빈곤한 나라, 그러나 생과 사를 넘어 영원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는 곳으로서 바라나시의 인물들은 영원에 대한 작가의 의지를 함축하여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 되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