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유럽여행할기회가 있었읍니다. 그중 , 로마의 바티칸궁전의 베드로성당,시스틴성당의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작품들은 그 화려함과 정교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읍니다. 특히 미케란젤로의 시스틴성당내부의 벽화와 천정화는 신의 창작품이라고 해야 좋을만큼 큰규모와 정교함을 자랑하고 있었읍니다. 고대 로마로부터 역사를 이어 오면서 15세기,16세기,17세기 에는 교황들이 로마의 영광을 되찿으려고 예술활동을 장려하여 문예부흥이 일어납니다. 위의 예술작품들은 거의가 15,16,17세기 르네상스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이러한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인류의 사랑을 받을것입니다 위의 글들은 " 영원의도시로마와바티칸시국"이란 책에서 간추린 글 과 저의 소감을 쓴 간단한 글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역대 교황들에 비해 여러가지 다른면을 갖고 있었으며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와는 특별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분이었다.
먼저 이탤리 사람이 아닌데다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 출신이라는 점이 가장 이색적이다. 과거 교황들중 이탤리 출신이 아닌 분들도 있긴 했으나 요한바오로2세 교황은 1522년 네델란드 출신으로 교황이 된 하드리아노6세후 456년만에 처음으로 비 이탤리출신 교황이다.
교황에 당선되기전 이름은 {카롤보이티야}추기경으로 폴란드 제2의 대교구인 {크라코프}대교구장이었다. 이분이 교황에 선출된 정확한 배경은 알수 없지만 그러나 이분의 뛰어난 성덕과 다방면에 걸친 출중한 지식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공산국가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복음화하기에는 제일의 적격자로 인정받은 것이 확실하다. 교황이 되기 전까지의 생활상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는 1920년 5월18일 {바도비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9세때 어머니를 여의고 13세때 하나뿐인 형마져 사망해 직업군인이던 아버지와 단둘이 어렵게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조국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후 화학공장의 노동자로,돌을 캐는 채석장에서 인부로도 일하면서 학업을 계속하였으며 시와 연극,각종 스포츠에도 남다른 재능을 가졌었다. 그후 1941년 부친마져 사망하자 사제가 되려고 결심, 신학교에 들어가 1946년 사제로 서품됐고 1958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주교가 됐다. 그리고 6년후인 1964년 {크라코프}의 대주교가 되고 1967년 추기경에 임명되어 교황이 되기까지 그곳 교구장을 지냈다. 1978년 10월16일 제 264대 교황이 되신후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해오고 계시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와는 특별한 관련이 있는 분이다. 즉 그것은 한국교회 2백주년인 1984년 5월3일부터 7일까지 4박5일간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셨으며 또 세계 최초로 103명의 성인을 탄생시키는 시성식을 한국땅에서 집전하신 것이다. 또한 1989년 세계성체대회를 우리나라에서 갖게 되었을 때도 방문하셨다. 또한 투철한 반공주의자로 공산치하에서 박해받는 폴란드 국민을 생각하듯 남북이 분단돼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더욱 큰 애정을 갖고 계신다. 교황의 한국방문이나 또 성인103명의 시성식을 한국땅에서 가졌고 또 세계성체대회를 우리나라에서 가졌다는 것은 매우 기쁜일로 볼때 요한바오로 2세는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질 것으로 보인다
- 베네딕트 16세 - 본명 : 요제프 라칭거 출생 : 1927년 4월 16일 국적 : 독일 학력 : 1939년 예비 신학교 입학 특이사항 : 4월 19일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265대 교황으로 선출 특징 : 동성애와 피임.낙태 문제 반대, 보수적 성향, 터키의 EU 가입 및 여성을 성직에 임명하는 문제 반대 경력 : 1951년 성직 임명, 뮌헨 대주교(1977), 추기경 임명(1977),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에 임명(1981), 콘클라베 기간 교황 선출 추기경단 의장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작품들은 그 화려함과 정교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읍니다.
특히 미케란젤로의 시스틴성당내부의 벽화와 천정화는 신의 창작품이라고 해야 좋을만큼
큰규모와 정교함을 자랑하고 있었읍니다.
고대 로마로부터 역사를 이어 오면서 15세기,16세기,17세기 에는 교황들이 로마의 영광을
되찿으려고 예술활동을 장려하여 문예부흥이 일어납니다.
위의 예술작품들은 거의가 15,16,17세기 르네상스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이러한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인류의 사랑을 받을것입니다
위의 글들은 " 영원의도시로마와바티칸시국"이란 책에서 간추린 글
과 저의 소감을 쓴 간단한 글입니다.....
- 교황요한바오로2세 - 오늘 뉴욕날자 4월2일 2005년 (84세) 서거
요한 바오로 2세는 역대 교황들에 비해 여러가지 다른면을 갖고 있었으며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와는 특별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분이었다.
먼저 이탤리 사람이 아닌데다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 출신이라는 점이 가장 이색적이다. 과거 교황들중 이탤리 출신이 아닌 분들도 있긴 했으나 요한바오로2세 교황은 1522년 네델란드 출신으로 교황이 된 하드리아노6세후 456년만에 처음으로 비 이탤리출신 교황이다.
교황에 당선되기전 이름은 {카롤보이티야}추기경으로 폴란드 제2의 대교구인 {크라코프}대교구장이었다. 이분이 교황에 선출된 정확한 배경은 알수 없지만 그러나 이분의 뛰어난 성덕과 다방면에 걸친 출중한 지식 그리고 세계의 수많은 공산국가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복음화하기에는 제일의 적격자로 인정받은 것이 확실하다. 교황이 되기 전까지의 생활상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는 1920년 5월18일 {바도비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9세때 어머니를 여의고 13세때 하나뿐인 형마져 사망해 직업군인이던 아버지와 단둘이 어렵게 살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조국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후 화학공장의 노동자로,돌을 캐는 채석장에서 인부로도 일하면서 학업을 계속하였으며 시와 연극,각종 스포츠에도 남다른 재능을 가졌었다. 그후 1941년 부친마져 사망하자 사제가 되려고 결심, 신학교에 들어가 1946년 사제로 서품됐고 1958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주교가 됐다. 그리고 6년후인 1964년 {크라코프}의 대주교가 되고 1967년 추기경에 임명되어 교황이 되기까지 그곳 교구장을 지냈다. 1978년 10월16일 제 264대 교황이 되신후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해오고 계시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와는 특별한 관련이 있는 분이다. 즉 그것은 한국교회 2백주년인 1984년 5월3일부터 7일까지 4박5일간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셨으며 또 세계 최초로 103명의 성인을 탄생시키는 시성식을 한국땅에서 집전하신 것이다. 또한 1989년 세계성체대회를 우리나라에서 갖게 되었을 때도 방문하셨다. 또한 투철한 반공주의자로 공산치하에서 박해받는 폴란드 국민을 생각하듯 남북이 분단돼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더욱 큰 애정을 갖고 계신다. 교황의 한국방문이나 또 성인103명의 시성식을 한국땅에서 가졌고 또 세계성체대회를 우리나라에서 가졌다는 것은 매우 기쁜일로 볼때 요한바오로 2세는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질 것으로 보인다
교황이름으로 '베네딕토16세' 사용키로결정
독일의 요세프라칭어(78)추기경이 4월19일
요한바오로2세의뒤를이어 제265대교황에 선출되었다.
본명 : 요제프 라칭거
출생 : 1927년 4월 16일
국적 : 독일
학력 : 1939년 예비 신학교 입학
특이사항 : 4월 19일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265대 교황으로 선출
특징 : 동성애와 피임.낙태 문제 반대, 보수적 성향, 터키의 EU 가입 및 여성을 성직에 임명하는 문제 반대
경력 : 1951년 성직 임명, 뮌헨 대주교(1977), 추기경 임명(1977),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에 임명(1981), 콘클라베 기간 교황 선출 추기경단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