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라 Georges Seurat

금수강산 1 4,331 2009.03.11 22:47



= 신인상주의-조르쥬 쇠라 =



seurat7.jpg

The Eiffel Tower,
1889, oil on canvas,
The Fine Arts Museum of San Francisco. 159KB




- 쇠라 Georges Seurat -


조르쥬 쇠라가 그림그리는 방법은 매우 특이하다.

쇠라는 사물의 이미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그결과 모든 사물이 점으로 이루어 졌다는 것을 발견하고

쇠라는 다른 화가와 달리 붓으로 그리는 대신

점을 찍어서 그림을 완성했다.

아래 그림 완성하는데 2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 끈질긴 인내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점을 찍어 그리는 방법을 점묘법이라고 하는데

당시 후기인상파 화가들은 이런방법의 그림을 매우 싫어했던것 같다.

쇠라가 인상파에 속하기는 하나 이러한 이유로해서

신인상주의라고 구분해서 불리운다.

아래 자료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것 같다.



seurat1.jpg

조르쥬 쇠라의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이그림은 신인상주의의 대표인 조르쥬 쇠라의 작품인데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런 기법을 인상화화가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나이 31살에 요절하는 바람에 신인상파는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인상파는 모네가 [인상, 일출]이란 그림을 전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서술한바 있다.

피사로를 비롯하여

마네,세잔,드가,르누아르, 여류 커새트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인상파가 찰나성이나 流動하는 느낌 등

빛의 정서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신인상파의 창시자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1859~1871)는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그래서 전자를 "낭만적" 인상주의,

후자를 "과학적" 인상주의라 부르기도 한다.

빛에 대한 관심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낭만적" 인상주의와 "과학적" 인상주의 사이에는

분명 연속성이 있지만,

낭만적 추구와 과힉적 추구 사이에는

그 현격한 시각 차이에 따른 단절이 존재할수 밖에 없다.


쇠라는 특히 삼원색과 색채 대비,

보색에 관해 심혈을 기울여 공부했고,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적용해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미술계 안팍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같은 열성적인 탐구 끝에 나온 그의 독특한 조형법에

점묘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쇠라는 과학자처럼 집요하게 빛과 색의 성질을 탐구함으로써

매우 개성적인 조형세계를 열게 됐고,

마침내 현대미술의 중요한 선구자 가운데 사람이 되었다.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는

쇠라가 점묘법을 이용해 그린 대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어느 일요일의 한가한 오후,

그랑드 자트섬에서 여가를 즐기는

파리 시민들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그림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풀밭에 앉아서 쉬는 모습을 차분하게 담고 있다.

한가롭기 그지없는 풍경이다.

안개가 낀 듯 다소 뿌연 느낌이 없지 않지만,

색조가 무척 신선한 인상을 주고

그림의 표면 역시 상당히 매끄럽게 느껴진다.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과 다른 점이있다면

인상파의 빛과 그림자는 찰나의 인상을 주는 반면,

쇠라의 빛과 그림자는영속적이고 영구적인 느낌을준다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한순간이 장중하고 영구적인 기념비로 남은 듯하다.



seurat8.jpg

쇠라의 [아니에르에서의 목욕]

쇠라의 그림이 주는 이런 독특한 인상은

찰나가 과학적 관찰의 대상이 되면서 영원으로 고정됐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화면 위로 붓을 휘두르지 않고

작은 점을 고르게 찍어 표현하는 점묘법을 사용했다.


병치혼합이라고 불리는 이 "시각적 마술"이 화면에

독특한 안정감과 기념비성을 더해준다.

이처럼 견고한 그림이 원숙한 노대가가 아니라

불과 서른한살의 나이로 죽은

젊은 예술가에 의해 탄생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는 젊음의 에너지를 격렬하게 분출하기보다

이처럼 냉철하고 이지적인 시선으로

사물이 질서를 깔끔하게 드러내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러나 빛을 그린 그림인데도

점묘법에 뿌리를 둔 그의 그림이 1886년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되자

몇몇 인상파화가들은 이 모임에서 탈퇴해버렸다.

그의 빛과 그림자가 기왕의 인상파의 빛과 그림자와는

다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빛이 그처럼 고정적이고

영속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을 참아 넘기지 못했다.



seurat3.jpg

Les Poseuses,
1886-88, oil on canvas,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A. 195KB




seurat6.jpg

Port-en-Bessin, Sunday,
1888, oil on canvas,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198KB




seurat10.jpg

The Siene at la Grande Jatte,
1888, oil on canvas. 146KB




seurat9.jpg

La Parade,
1888, oil on canvas,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147KB




seurat4.jpg

Young Woman Powdering Herself,
1888-90, oil on canvas,
Courtauld Gallery, London. 236KB




seurat5.jpg

Le Chahut,
1889-90, oil on canvas,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248KB




seurat2.jpg

The Circus,
1890-91,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232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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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금수강산 2009.03.16 21:52
후기 인상주의 ...쇠라,로트렉,세잔느,고갱같은 프랑스 화가와 네델란드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작업한 반 고흐를 포함하는 프랑스의 한사조 입니다. 활동기간은 1880~1905년 사이입니다. 후기인상파의 화풍은 선배 인상파들(마네, 모네,르누아르,드가)의 혁신적인 요소에서 출발한것입니다. 화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제작된 회갈색의 관학적인 역사화 대신 그들의 화폭은 무지개같이 찬란한 색채로 넘쳤습니다. 쇠라와 세잔느는 보다 견고하고 거의 과학적인 회화를 지향했는데 쇠라는 점묘법을 세잔느는 색면을 개발하였습니다. 고갱과 반 고흐,로트렉은 마치 후기 낭만주의자들 같이 빛과 색채를 통한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충실하였습니다. 입체주의와 초 현실주의 같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20세기 미술양식은 바로 이두개의 미술사조에서 발생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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