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명문 중 하나인 줄리어드 음대에는, 흔히 줄리어드 쿼텟(Julliard Quartet)이라고 불리는 줄리어드 현악 4중주단이 있다. 1946년 창단한 줄리어드 쿼텟은 당시 교장이었던 작곡가 윌리엄 슈만의 제청에 의해 4명의 음악원 교수가 모여 결성됐다. 학교의 이름을 그대로 딴 이 실내악단은 명성에 걸맞게 데뷔 때부터 정밀한 기계와도 같은 호흡과 밸런스로 수많은 명연을 남겼고, 이후 일부 멤버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교한 앙상블과 넓은 음악적 레파토리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대학에도 줄리어드 쿼텟처럼 학교의 이름을 내건 실내악단이 있다. 바로 올해 창단 16년을 맞이한 숙명트리오다. 홍종화(바이올린), 손정애(피아노), 채희철(첼로) 교수로 구성된 실내3중주단인 숙명트리오는 매년 다양한 색채의 음악세계를 선보이며 우리대학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오는 3월 19일(수) 정기연주회를 앞두고 한창 연습에 매진 중인 숙명트리오를 지난 7일(금) 음악대학 학장실에서 만났다.
숙명의 이름으로 16년, 국내 대학 실내악단의 역사를 써내려가다
“특정지역명이나 스폰서명으로 운영되는 실내악단은 많아요. 그러나 대학 이름으로 멤버의 교체없이 이렇게 오랜 기간 유지되는 실내악단은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봅니다”
손정애 음대학장은 숙명트리오의 존재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올해로 16년, 음대교수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과 솔로이스트의 활동을 병행하는 와중에 시간을 맞춰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이들은 숙명트리오 정기공연 이후에도 협연과 독주회를 하는 강행군 일정을 소화 중이다.
손 교수는 “얼마 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공연하는 모습을 봤는데 많이 공감됐어요. 그 짧은 몇분을 위해 몇 년을 고생하잖아요. 우리도 똑같아요. 잠시의 공연을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연습하죠. 그나마 김연아 선수는 은퇴라도 하지만 우리는 은퇴도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어려움은 또 있다. 학교의 이름을 내건 탓에 기업의 후원은 언감생심. 교내 연구비로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때때로 사비를 들여 공연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숙명의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모아 말한다. 숙명트리오의 탄생이 단순히 취미활동의 일환이 아니라 숙대 음대 교수라는 사명감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7일(금) 음악대학 학장실에서 숙명트리오를 만났다. 왼쪽부터 채희철 교수, 손정애 학장, 홍종화 교수.
숙명트리오의 창단은 지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학부에서 막내교수였던 홍종화 교수는 욕심이 있었다. 미국 줄리어드 음대에서 수학하며 줄리어드 쿼텟같이 모교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실내악단을 익히 봐온 그는 국내에도 이처럼 역사 깊고 전통있는 대학 실내악단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마침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함께 나온 동창 손정애 교수가 숙대로 부임해 먼저 2중주단을 꾸렸다. 홍 교수는 “중고등학교 시절 전교생 100명인 학교에 6년간 같이 다녔으니 서로 잘 알 수 밖에 없던 사이”라며 “특히 학교에서 공연할 때마다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들을 한데 묶어주는데 손 교수와 내가 거기서 만나 친해지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손 교수가 고2때 독일로 음악유학을 떠나고 홍 교수가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진로를 갈렸지만 결국 숙명여대에서 다시 재회했다. 편안한 앙상블은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다.
동창끼리 모여 만든 실내악단은 1997년 역시 서울예고 7년 후배인 채희철 교수가 학교에 부임한 뒤 현재의 숙명트리오로 거듭났다. 손 교수는 “마음에 드는 첼리스트가 오면 영입해야겠다 싶던 차에 마침 채 교수가 나타나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바로 데려왔다”며 웃었다.
숙명트리오는 결성되자마자 네덜란드 한국대사관의 초청으로 암스테르담 로열 콘서트게보우홀에서 연주했으며 서울, 춘천, 원주 등지에서도 초청공연을 가졌다. 이듬해 4월 음대 50주년을 맞아 정식으로 창단한 뒤 매년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서울시향,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과의 협연, 다수의 지방순회공연을 이어왔다. 특히 2009년 국회 초청연주, 2010년 영국왕립음악원 초청 런던 연주 및 마스터클래스, 2012년 위스콘신 주립대 초청 연주와 마스터클래스까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하며 탄탄한 연주실력을 자랑했다. 홍 교수는 “음악을 통한 국제교류로 학교 선전도 하고 나라도 알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고 말했다.
숙명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공연
음대 1층 로비 옆 벽면에는 거대한 사진이 걸려있다. 바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숙명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역사적인 공연을 했던 모습이다. 사진에서 숙명트리오도 언뜻 발견할 수 있었다. 손 학장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숙명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한 것은 음악계에 일대 사건이었다. 국내대학의 학부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세계적인 무대에서 연주를 한 것도 처음일뿐더러, 교민들은 물론 호주 현지 주류사회에서도 깊은 관심을 보일 정도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오페라하우스 공연은 홍종화 교수가 음대 학장으로 재직할 당시 처음 추진됐던 프로젝트다. 전 숙명학원 이사장이었던 이세웅 신일학원 이사장으로부터 후원을 약속받은 뒤 2년여간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준비했다. 80여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선발한 뒤 수 개월간 피나는 연습을 거듭했다.
공연준비가 마무리된 뒤에는 흥행이라는 또다른 부담이 다가왔다. 손 교수는 “공연을 무료로 오픈하기로 하고 사전답사를 다녀왔는데 전체 2,600여석 가량 됐어요. ‘이 많은 좌석을 어떻게 채우나’ 걱정돼 동문들을 붙잡고 꼭 많은 분들을 데려와주셔야 한다고 사정했죠. 시드니 문화원장이 교포행사가 아니라 호주 사회에도 소개하고 싶다고 해서 현지 유력인사들과 외교사절들에게도 초청장을 보냈지만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연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오페라하우스 사이트를 통해 티켓을 오픈하자마자 4,000여명이 몰려 이틀 만에 매진됐고, 시드니 한국문화원 앞에는 남은 표를 구하기 위해 수백미터의 대기줄이 이어졌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선발된 학생의 부모들조차 표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당일 오페라하우스 앞에선 무료공연 티켓이 암표로 거래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또한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총독과 시드니음대 학장, 현지방송국 대표 등 유력인사들과 외교단 100여명도 참석해 높은 열기를 보였다. 홍 교수는 “공연이 끝나고 정말 모든 제자들을 하나하나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고 회상했다. 음대 차원에서도 시드니 공연은 하나의 터닝포인트였다. 손 교수는 “원래 우리 학생들이 개개인 플레이는 미흡하더라도 하나로 뭉쳐서 하는 건 굉장히 잘했는데 시드니를 다녀오고 나선 그런 시너지 효과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숙명트리오는 인터뷰 중간중간 음대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손 학장은 “오티 때 신입생들을 만나면 다들 한결같이 정말 오고싶은 대학에 왔다고 얘기해요. 입바른 소리일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 음대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을 자랑하죠. 단적인 예로 지난해 서울대와 우리대학 등 주요 6개 대학이 합동 연주회를 했는데 모든 표가 예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어요. 우수한 학생과 훌륭한 교수진들이 노력한 덕분입니다”라고 말했다.
투철한 애교심 덕분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이들은 90년대 말 전국 고등학교를 다니며 입학홍보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입학처에서 입시홍보의 일환으로 고등학교를 순방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교수가 2인 1조로 고등학교 진로담당 교사를 만나 학교홍보를 했는데 음대 차원에서도 고등학교들을 찾아가 음악회를 열었지요. 자그마한 봉고차에 악기와 교수들이 한데 얽혀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유랑극단이나 다를 바 없었어요. 서울 숭의여고에 갔을 땐 연주를 해야 하는데 날씨가 추운 탓에 손이 안 풀려 고생했다니까요(웃음)”
손 교수는 “개런티 없이 방방곡곡 맛집 찾아가서 밥만 먹는데도 행복했다”며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정말 못 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숙명트리오의 다가올 20주년을 위해
오는 3월 19일(수) 예술의 전당에서 정기연주회를 여는 숙명트리오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복잡한 현대음에서 벗어나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작품들을 선보인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곡을 국내 초연한다는 계획이다. 채 교수는 “10주년 때는 피아노트리오 가운데 가장 어렵다는 차이코프스키의 곡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을 연주했고, 15주년 때는 비올리스트를 초청해 4중주단을 구성하기도 했죠. 올해에는 기존 레퍼토리를 벗어나 서로가 꼭 연주해보고 싶던 곡을 찾던 중 아르보 패르트의 비교적 덜 알려진 곡을 오프닝곡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숙명트리오의 이러한 시도에는 음대 교수로서의 자의식이 담겨있다. 채 교수는 “정기연주회이다 보니 대중적인 곡들만 할 수는 없습니다. 제자들과 학교에 있는 다른 선생님들도 보기 때문에 가능하면 학구적이고 배울 점이 있는 곡을 꼭 넣으려고 하죠. 틈나는 대로 새로운 레퍼토리를 계속 찾아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대학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만큼 남들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곡을 끊임없이 발굴하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숙명트리오는 오는 2018년 창단 20주년을 맞이한다. 아직은 까마득해 보이지만 이들은 그때를 이미 상상하고 있다. 홍 교수는 앞으로 숙명트리오가 그릴 그림에 대해 담담히 말했다. “속으로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손 교수나 저나 정년이 많이 남은 건 아닌데 퇴직하고 나서도 숙명트리오가 계속 됐으면 좋겠어요. 줄리아드 쿼텟도 모든 멤버가 바뀌었지만 계속 명성을 이어가잖아요. 우리도 새로운 분들이 오셔서 이어받았으면 좋겠어요. 20주년이 될 때 꼭 지방투어도 하고 특별한 음악회도 열어 예술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가교역할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