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포게 “거대기업의 로비정치가 분배정의 후퇴시켜”
‘존 롤스의 수제자’ 토머스 포게 예일대교수 숙명여대 강연 !!!
토머스 포게 교수는 지구적 분배 정의를 후퇴시킨 주범으로 거대 은행과 다국적 기업,
이익집단의 로비 정치를 지목했다. 그는 “국가적, 초국가적 차원의 분배 규범을 디자인하는 각국 공직자들을 무차별적 로비 공세에서 지켜내려면
시민들의 감시와 민주적 통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부상으로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국가 간 불평등은 과거보다 완화됐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국가마다
심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7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 숙명여대에서 ‘전 지구적 정의’를 주제로 강연한 토머스 포게 예일대
교수(61·정치철학)에겐 ‘존 롤스의 수제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고전 ‘정의론’을 쓴 존
롤스(1921∼2002)의 지도로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분배 정의를 강조한 롤스의 정의론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롤스 실현하기’(1989년) ‘세계의 빈곤과 인권’(2002년) 같은 책을 썼고, 2004년에는 빈곤국 국민에게 저렴한 가격에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헬스 임팩트 펀드(Health Impact Fund)’라는 비영리기구를 창립했다.
포게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지난 수십 년간 세계적으로 ‘분배 정의’가 후퇴하고 있는 사실을 강조했다.
“1998년 세계 인구 중 가난한 하위 10%의
소득이 전체의 0.34%였는데 2008년에는 0.25%로 줄었다. 미국의 경우 지난 30년 사이 소득 하위 50% 인구의 소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6.4%에서 12.8%로 반 토막 났다. 미국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한국도 1998년 이후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다”
그는 그 원인으로 거대 은행과 기업, 이익단체의 ‘로비 정치’를 꼽았다. 환경오염의 주범인 선진국과 이들 국가의 기업에
환경오염세를 물리려는 국제 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못 맺는 이유도 결국 로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각종 로비로 부자들에게 유리한 규칙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불평등이 심화하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됐다는 것이다.
해결책으로는 민주적 감시와 통제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시민들이 분배 정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오늘날 국가적, 초국가적 분배 규범을 디자인하는 각국 공직자들이 로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것도 따지고 보면 시민들의 무관심 탓에 가능했다.”
구조적 개혁만큼이나 그가 중시하는 것은 현존하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 대응이다. 강단 철학자로 출발한 그가 ‘헬스 임팩트 펀드’를 만든 이유다.
“제약사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말라리아나 에이즈 치료제를 생산비만 받고 팔고, 대신 제약사의 손해는 각 국가들이 낸 기금으로 만든 펀드에서 보상해 주자는 게 헬스 임팩트
펀드의 핵심 개념이다.”
이 펀드는 이미 몇몇 대형 제약사와 제휴를 맺었고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건강과 교육을 ‘기회의 평등’의 핵심 요소로 꼽았다. 고든 브라운 유엔 글로벌 교육 특별
대사와 함께 빈곤국 교육 지원을 위한 온라인 강의 시스템 구축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금융거래세나 환경오염세가 재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오염물질은 주로 부자 나라 사람들이 배출하고 있는데 그 피해는 주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떠안고 있다. 환경오염에 대한
세금은 무겁게 매길 필요가 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