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르다 서정자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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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자르다             서정자

 

 


2007년 여름엔가 암태도엘 갔는데 찾는 사람이 성당에 갔다고 해서

동네 성당엘 갔지요.

시골 자그마한 성당엔 동네 사람들이 이, 삼십여명 앉아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있었습니다.

 

완죤 향토어, 사투리로 강론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이 뜻밖에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단(강단)에 올린 꽃꽂이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골에 어디 꽃가게가 있겠어요.

마당의 맨드라미를 잘라다 꾹 꽂은 그 꽃이 얼마나 강렬한 감동을 주는지

신부님의 사투리와 함께 가슴에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도시의 그 어느 화려한 꽃꽂이 보다도 정성이 담겨보였습니다.

 



 

 

[수필문학]10월호에 발표된 성당에서 찍은 맨드라미를 소재로 쓴 수필 입니다. 
 


                 (수필)                                  자르다

 

                                                                                                             서정자

 

    자리를 옮기면 따라서 컴퓨터의 파일을 옮기게 된다.

    정년으로 학교를 떠나면서 세 개의컴퓨터에서 파일을 잘 옮긴다고 옮겼는데 소중한 파일을

    꽤 잃어   버렸다.

    미련을 버리지못하고 가끔 파일을 뒤지면서 이 속에 들었나, 저속에 들었나, 찾아보던 어느 날

    잃어버린 줄 안 사진 파일 하나를 찾아 보물이라도 건진 듯 환호를 한 적이 있다.

    암태도 성당에서 찍은 제대의 꽃이다.

 

    배가 닿자 내리던 비는 더욱 세차졌다.

    빗속을 뚫고 도착한 동네의 어렵사리 찾은    집에 작가의 조카딸은 없었다.

    지금 막 성당에 갔다고 한다.

    어느새 활짝 갠 날씨에 젖은 머리와 신발이 어색하였으나 신도들 틈 빈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섬마을 자그마한 성당의 미사는 조촐하고 아늑하였다.

    사투리로 강론을 하고 계시는 신부님은 말씨만큼이나 투박한 인상이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제대의 꽃이었다.

    흰 레이스로 감싼 꽃병에는 커다란 맨드라미 한 송이가 뚝 잘려 꽂혀있고 장미가 한 송이씩

    양 옆에 더해졌을 뿐이었다.

    눈을 돌리니 성모상 발치 양쪽에 놓인 두 개의 꽃병에도 흰 족두리 꽃이 보랏빛 엉겅퀴와 어울려

    꽂혀있었다. 더도 말고 한 송이씩 꽂힌(셈인) 그 꽃들은 어느 신도의 집 꽃밭에서 오늘 새벽 잘려

     바쳐진 것일시 분명해 보였다.

    꽃꽂이의 기본 구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꾹 꽂아 놓은 그 꽃들이 값비싼 꽃과 화기를

    동원해 화려하고 권위 있게 꽂은 그 어느 제단의 꽃꽂이보다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맨드라미의 강렬한 붉은 색은 그 색깔만으로도 영혼을 파고드는데 숱하게 꼬불꼬불 꼬부라진

     꽃 판은 지금 막 바쳐진 심장만큼이나 뜨겁고 싱싱했다.

     이 꽃 한 송이면 제대의 꽃꽂이로서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푹 꽂아놓은 이

     맨드라미는 일찍이 내가 본 그 어느 맨드라미 보다 크고 완벽하게 붉었다.

     이 섬마을 그것도 깊숙이 들어앉은 간석지에 성당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어엿한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고 있을뿐더러 이 소박하고 단순한 구도의 꽃이 제대에 올라있는 것까지 내게

     잊히지 않는 장면이었다.

     만나고자 했던 이와의 만남이나 비를 뚫고 함께 갔던 야마다선생과의 여행도 소중한

     추억이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제대에 꽂혀있던 새빨간 맨드라미가 뇌리에 깊이 박혀 사진 파일이

      어디 갔지, 두고두고 찾던 차였다.

 

     제대나 강단에 바쳐진 꽃은 언제 보아도 싱싱하다. 그것은 생명을 바친 때문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꽃은 꺾이는 것이 아니라(折花) 잘린다(切)고 나는 생각해 본다.

     꺾을 절(折)에는 절단한다는 뜻 외에도 휘이다, 굽히다, 는 뜻이 있는 반면 끊을 절(切)에는

     새기다,   정성스럽다, 종요롭다, 간절하다 등의 뜻이 있다.

     제대의 맨드라미는 ‘잘려져’ 꽂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도록 가지는 굵었으며 길이 역시

     짧았기에 시골 마당의 꽃이라는 소박한 이미지가 뚜렷한 채 직설적으로정성스럽고 종요롭고

     간절해 보였다.

    이 단순하고 소박한 꽃꽂이는 무엇보다 ‘서구’라는 이미지의 성당과는 실로 뚱하리만큼

    대조적 으로 촌스러워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단순 소박한 꽃꽂이는 그래서 더욱 부각되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그 꽃꽂이와 사투리의 말씨 그대로 신도들에게 강론을 하는 신부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은 잠깐, 신부님은 아이들을 꾸중하는 어른의 말투를 닮아가고 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의 고해성사를 다 받으시는 신부님이라면 가가호호 사정과 사람들의 맘속을

     속속들이 다 꿰고 계시기에 부모님이 아이들을 다루듯 그렇게 말씀을 하실 수도 있으시겠지.

     이 소박한 꽃을 봉헌하도록 허락하신 신부님이라면 그분 역시 단순하고 순박한 분이심에

     틀림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지만 만나고 잊어버리곤 하는 나의 둔감은 가슴에 새길 아름다움을

    그리 많이 갖지 못했다.

    논리보다 감정이 중요하다던 어느 철학자의 말은 진리였던가.

    나의 삭막한 삶 속에서 그날 그 성당에서 만난 맨드라미는 어쩌면 나의 잃어버린,아니 찾아야 할

    영원한 존재의 원형쯤 되는지도 모르겠다.

    휘거나 굽히기 쉬울망정 끊거나 자르는 아픔을 선택하기 어려운 나의 우유부단은저 한 송이

     맨드라미만큼의 소박한 열정이나 절화(切花)적 결단이 무척은 가져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제대엔 언제나 생명이 바쳐지기에 아름답다. 꽃은 생명의 은유이며 사람들은 생명 대신 꽃을 놓고

     무릎을 꿇는다.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는 17세기 기독교박해 때 페이지마다 X표를 그은 성경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번 여름 방문했던 모모야마학원 자료실 입구에는 기독교 포교 금지를 알리는 포고문의 나무판이

     전시되어있었다.

     검은 먹물로 쓰인 글씨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방금 붓을 뗀 듯하였다.

     엔도슈샤쿠의 『침묵』이 순간 떠올라왔다.

     교토의 가모가와 천변에는 기리시탄 순교비가 세워져있었다. 상상을 절하는 고난이 엔도슈샤쿠의

     문학으로 승화되어 세상에 전해졌다. 서울 합정동에는 절두산 성지가 있다.


     멕시코의 박물관은 온통 제단에 올리기 위해 산 인간에게서 꺼낸 심장을 담은 그릇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에 50명씩 산사람의 심장이 바쳐졌다는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 마야의 역사와

     문화가 전시 된  인류사박물관엔 피비린내가 가득한 듯해서 멀미가 났다.

     하지만 신전에 바쳐진 그 심장은 모두가 자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았다고하니 그것은 꽃을 담은

     꽃병이었다고 해야 할는지 모른다.

     잘릴지언정 꺾이지 않은 영혼들을 생각한다. *

 

      서 정자 박사 - 숙명여대 국문과 졸(65) 동 대학원 문학박사 초당대학교 부총장 역임, 한국여성문학학회

      고문, 세계한국어문학회 회장, 박화성연구회 회장, 나혜석학회 회장, 숙대문학인회 회장역임, 한국문인협회

      회원(평론)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저서-  한국근대여성소설연구(국학자료원1999)  한국여성소설과 비평(푸른사상2001)  수필집 여성을

     중심에 놓고 보다(푸른사상2002)  편저 한국여성소설선(갑인출판사1991)  원본 정월 라혜석 전집(국학

     자료원2001)  박화성의 북극의 여명(푸른사상2003)  지하련 전집(푸른사상2004)  박화성 문학전집 20권

     (푸른사상2004)  강경애선집 인간문제 외(2005범우비평 판 한국문학24-1) 김명순문학전집(푸른사상2010)

     우리문학속 타자의 복원과 젠더(푸른사상2012)

 

     이곳에 글을 허락하신 서정자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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